재판부 "전 연인 어머니 출입 승낙 받기 위해 친구라고 속였더라도 승낙의 유효성은 유지"
법조계 "모친 주거 내 있었고 승낙 받고 들어간 것…'주거의 평온상태' 깨지지 않아 무죄 판단"
"피고인, 거주지 내부 침입하려는 시도했다면 유죄 성립됐을 것…물리적 침입은 없었던 것"
"꼬여 있던 주거침입죄 법리 정리의 계기…'주거의 평온상태' 개념의 명확한 기준·구체적 정립 필요"
친구라고 속이고 옛 연인이 사는 다세대주택 공동현관을 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법조계는 거주자 중 일부의 승낙이 있었고 통상적인 출입방법을 거쳤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따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주거의 평온 상태'를 해치는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3단독 임민성 부장판사는 17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40)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만남을 거부하는 전 연인에게 사전 연락 없이 찾아가 어머니의 출입 승낙을 받기 위해 친구라고 속였다고 하더라도 승낙의 유효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공동거주자인 B씨 모친이 피고인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사정이 있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오후 10시40분께 서울 강북구의 한 다세대주택 공동현관 인터폰을 통해 한 달 전 헤어진 B씨 어머니에게 친구라고 둘러대고 공동출입문을 통과한 뒤 B씨 집 현관문 앞까지 간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법무법인(유)로고스 여상원 변호사는 "공동거주자의 일부가 부재중 주거 내에 현재하는 거주자의 승낙을 받아 외부인이 공동주거에 들어간 경우라면, 그것이 부재 중인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며 "이번 사건은 '주거의 평온상태'가 깨지지 않았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동인 김종민 변호사는 "주거침입 관련 사건의 경우 개인의 어떠한 보호법익이 보호되어야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거주자 측 주거의 평온성을 깨지 않았고, 모친이 주거 내에 있었으며 비록 그 과정에서 속임수가 있었더라도 승낙을 받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은의법률사무소 이은의 변호사도 "피고인이 공동주거에 침입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확대와 왜곡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초 승낙을 받고 들어 갔을 경우 주거의 평온이 깨질 만한 다른 범죄가 있지 않는 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다만, 만약 피고인이 거주지 내부까지 침입하려는 시도를 했다면 유죄가 성립했을 것으로 봤다.
여 변호사는 "거주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피고인이 문을 강제적으로 개방하려고 했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했을 것이다"며 "해당 사건의 경우 거주지 공동점유자에 대한 정신적 침입은 있었으나 물리적 침입은 없었다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만약 공동점유자인 B씨가 집에 돌아와 A씨에게 나가라고 요청했음에도 이를 듣지 않았다면 퇴거불응에 해당하며, 같은 행위가 반복된다면 거주자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판단돼 스토킹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며 "또한 공동주거라고 해도 다른 제3의 거주자가 현관문을 통과할 때 몰래 들어간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이번 판례를 통해 꼬여 있던 주거침입죄 법리가 정리됐다며 '주거의 평온상태'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과 구체적인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률사무소 현강 이승우 변호사는 "이번 판례를 통해 그동안 꼬여 있던 주거침입죄 법리가 정리됐지만, 지난해 나온 전원합의체 판례를 보면, '주거의 평온상태'에 관해 '거주자의 의사, 주거의 형태와 용도 및 성질, 출입 당시 상황' 등으로 적시됐다"며 "그 의미가 추상적이고 아직 불명확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만큼 해당 개념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과 구체적인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