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비공개된 타인 간 대화 녹음해선 안 돼…징역 1년 이상 또는 징역 10년 이하"
"본인 있으면 타인과의 대화 녹음해도 무방, 몰래 녹음하면 도청…외도 의심돼도 발설은 명예훼손"
"몰래 녹음 및 위치추적기 사용 등 모두 불법 증거 수집…변호사나 전문기관 도움 받아 증거수집 해야"
"대한민국 이혼법, 세계서 유일하게 '상대방 잘못 직접 입증'해야 하는 유책주의…외국은 파탄주의"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몰래 대화를 녹음한 뒤 이를 이혼소송에 제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에게 1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녹음한 것 자체가 불법이기에 실형이 선고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녹음을 할 때 고의성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녹음했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이혼법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대방의 잘못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유책주의라서 이런 일들이 즐비하다며, 외국은 파탄주의라고 해서 증거 없어도 이혼이 가능해 증거 수집 자체가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종채)는 명예훼손,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자격정지 1년도 함께 명령했다.
A 씨는 지난 2020년 10월 서울 광진구 소재 자택에 외장 하드디스크 형태의 녹음기를 설치해 3차례에 걸쳐 배우자 B 씨의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하고 청취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A 씨는 B 씨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지난 2020년 11월 아내 직장 동료에게 'B 씨와 전 남편 사이에 딸이 있었는데 이를 숨기고 나와 결혼했다'는 취지로 말하고, 같은 해 12월 또 다른 아내 동료들에게 불륜 의혹을 언급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고, 이혼소송에서 증거로 제출해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외도가 의심되더라도 녹음했더라도, 몰래 녹음한다면 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혼사건 전문 이인철 변호사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의 경우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하면 안된다고 돼있다. 특히 본인이 있으면 녹음해도 괜찮지만, 몰래 녹음하는 것은 도청으로 인식한다"며 "보통 부부간 외도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데, 명예훼손 혐의와 경합돼 형이 세진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차원 장윤정 변호사 역시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서 청취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상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질 수 있다"며 "이혼 소송에서 증거를 제출할 때, 이같은 오류를 범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 변호사는 "이혼 소송에서 증거로 많이 이용되는 것 중 하나가 차량 블랙박스다"며 "블랙박스에는 우연히 외도 증거가 녹음될 수도 있는데 우리 법원은 이런 경우는 증거로서 인정을 해주고 있다. 우연히 특정 의도 없이 녹음된 것에 대해서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킹덤컴 법률사무소 박성남 변호사는 "A 씨가 배우자 직장 동료에게 불륜 의혹을 언급한 것 역시 원칙적으로는 잘못한 것이다"며 "설령 외도가 의심된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에 발설한 것은 명예를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이혼소송 중인 경우 녹음하는 것 외에도 불법적인 요소는 피해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부분 이혼소송은 민사소송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입증 책임도 원고에게 있다 보니 잘못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로엘법무법인 이태호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사인 간의 다툼에서 증거를 확보하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는 시대다. 다만 사인 간의 문제에서 경찰 공권력이 도입되고, 그럴 수가 없는 부분에서는 스스로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거 침입을 하거나 위치 추적기를 붙이는 등 불법적인 행동을 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변호사나 전문 기관에 물어보고 증거 수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인철 변호사는 "우리나라 이혼법이 유일하게 세계에서 유책주의다. 그래서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것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며 "반면 외국에서는 파탄주의라고 해서 증거 없어도 이혼이 가능하다. 그렇기때문에 몰래 녹음하는 등의 불법적인 증거를 준비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