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을 마치 ‘가해자’로 바라보는 것 같다”
최근 금융권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금감원장이 검사 출신이다 보니 최근 은행권을 가해자로 바라보고 수사를 펼치는 느낌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금융권을 향한 강경 메시지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내리면서 시장경제 질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경제란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유경쟁에 의해 형성되는 가격을 지표로,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전개하는 경제 체제를 일컫는다. 민간기업인 은행을 향한 당국의 지나친 개입이 우리 사회의 이 시장질서를 흐뜨려놓는다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쏘아올린 ‘은행은 공공재’ 발언에서 시작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 사기업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들이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 모델에 대해 ‘민간이 주도하는 공정 혁신경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시장의 분위기는 반대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특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선봉에 서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전 금융권이 몸을 사리며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하다.
최근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인하와 취약계층 지원 강화를 요구하자, 은행권은 일제히 대출금리를 인하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되고 있지만, 당국의 지적으로 우대금리를 확대하고 예금금리를 낮추는 등 고객이 실질적으로 내야 하는 금리 수준을 낮췄다.
은행권에선 금융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매달 예대금리차가 공시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은행들을 줄세우기 하고 있다는 불만이 새어 나온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국이 은행의 보수체제를 점검한다고 발표하면서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주가가 1월 고점 대비 평균 10% 넘게 떨어졌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공공재’ 발언 이후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외국인은 4대 금융지주를 1929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주주환원 확대 기대감에 급등했던 은행주가 정부와 여론의 비판에 부딪히면서 상승분을 반납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의 입김은 금융지주 수장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1월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CEO 선임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은행의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내부통제 및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 등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은행별 최소 연 1회 면담을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은행이 돈잔치를 벌였다는 이유로 지배구조까지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은행은 민간기업이지만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당국의 움직임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민간기업인 은행이 스스로 금리와 수수료를 결정할 수 없고, 지배구조마저 당국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럼 은행이 위기를 맞았을 때는 누구의 책임인가. 향후 은행이 위기를 맞을 때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할 힘은 기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은행을 향한 당국의 시선이 다소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오히려 당국을 향한 감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건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