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마련해 단속 강화해도
"남한말이 뭐가 잘못이냐"는 반응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31일 북한인권보고서를 사상 처음 공개 발간한 가운데, 향후 실질적 북한 인권 개선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실상 내부 역량을 총동원해 사상 결집을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 특히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불어나는 '원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북한이 전방위적 통제 강화 일환으로 각종 입법 조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보유입 및 심리전에 취약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5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서울 한 호텔에서 개최한 '2023 NK포럼'에서 북한 당국이 △반동문화사상배격법(2020년) △청소년교양보호법(2021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등 "'3대 악법'을 (연이어) 만든 것 자체가 한국 드라마 등 정보유입에 대한 두려움을 반증한다고 본다"며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심리전과 정보유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정보유입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사는 특히 "북한 청년들이 부모 세대와 달리 엄청나게 단속을 받았음에도 '영화나 (남한)말이 뭐가 잘못이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법적 근거를 만들어 남한 문화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청년세대들은 '더 조심해서 보겠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 대사는 "한국 영화·드라마를 보지 않거나 한국말을 하지 않으면 '할 게 없다'고 하더라"며 "굉장히 많이 바뀌고 있다. 인권이 뭔지 모르지만 '우리의 인권도 있는데'라며 인권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도 새로운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판 MZ세대를
통일의 씨앗으로 키워야"
북한 외교관으로 일하다 귀순한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탈북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북한 체제가 외부충격 없이는 변화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며 "엘리트부터 북한 주민들 자체가 거의 체념 상태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고 전 부원장은 "외부충격을 가하면 (북한의) 정책적 대응이 일어나고, 정책적 대응이 과소 또는 과대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데 저희들(탈북민들)이 거의 의견 일치를 본다"며 외부충격 일환으로 정보유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 장마당 세대, 북한판 MZ세대가 확실히 기성세대보다 자유분방하고 호기심이 많고 바깥에 귀를 기울이는 측면이 크다"며 "우리가 이 (북한판) MZ세대를 통일의 씨앗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북 심리전'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있는 만큼 '문화적·심리적 차이를 줄이는 방법'과 같은 새로운 용어를 마련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단금지법, 악법 중 악법
통일부 해석지침 바꿔야"
정보유입의 중요성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시절 마련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북전단금지법은 악법 중 악법"이라며 "북한이 인터넷 연결도 안 되고 가장 폐쇄적이기 때문에 북한을 압박하거나 변화시킬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가 USB(이동식저장장치)와 전단"이라고 말했다.
제 교수는 "통일부가 (법안 관련) 해석지침을 만들어 놨다"며 "모든 전단을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와 소통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전단금지법 24조 1항에는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전단 등 살포)를 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된다"고 적시돼있다.
제 교수는 △전단 등의 살포 여파로 국민 생명·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하는 경우 △전단 등을 살포해도 국민 생명·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등 2가지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며 "법조문 사항에서 2가지를 준별하고 예시하는 해석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문제의식이 없다"고 꼬집었다.
북한이 민감해하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악의적 비방이 아닌, 북한 체제 등과 관련한 건전한 비판 전단을 야간에 은밀히 살포하는 정도는 법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