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10일 영남권 찾아 '洪·文' 예방 광폭행보
'차기 대권주자' 洪 만나 尹에 견제구 던지고
'진보진영 상징' 文과 소통해 친명·비명 통합
행보…'돈봉투·김남국'서 '의제 전환' 효과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남권을 찾아 홍준표 대구시장, 문재인 전 대통령과 차례대로 회동할 예정이다. 이 대표가 이 두 인사를 방문하는 날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주년과 정확하게 겹치는 만큼 홍 시장과의 만남으론 윤 대통령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문 전 대통령 예방으론 민주당과 지지층에 결속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9일 저녁 경북 구미에서 '찾아가는 국민보고회'를 시작으로 1박2일 간의 영남권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 오는 10일 오전에 이 대표는 대구를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고 민주당 대구시당 개소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 1시에 이 대표는 홍준표 대구시장과의 만날 계획이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철도 노선인 달빛내륙철도와 대구·경북(TK)신공항 특별법 통과 후속 조치 등 지역 이슈들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다.
이후 이 대표는 오후 3시 경남 양산으로 이동해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한다. 문 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사저 인근에 문을 연 '평산책방'을 찾아 지난 1월 2일 이후 약 4개월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겠다는 목적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의 이번 영남권 행보의 표면이 아닌 내면을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번 방문이 '보수의 심장'이자 민주당 약세 지역인 영남권의 민심을 다지기 위한 이유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특히 방문일이 윤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이 되는 날인만큼 이 대표가 홍 시장과 문 전 대통령과 만나겠다는 일정을 잡은 점도 의미심장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홍 시장과 이 대표의 회동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영수회담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거듭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아, 윤 대통령과 아직 단 한 차례도 공식 회동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대통령실은 지난달 28일 새로 선출된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회동을 제안하면서 이 대표를 '패싱'하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당시 윤 대통령과 경쟁을 펼쳤고, 지금도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홍 시장과의 회동을 통해 윤 대통령의 고립을 유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울러 최근 홍 시장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을 빚다 당 상임고문에서 해촉된 만큼, 현 정부와의 대립각을 더 고조시키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과 경쟁했던 홍 시장을 만나는 건 현 정부의 실정을 조금이라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 홍 시장을 만나가지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이 큰 정치인으로 보이려는 의도도 숨어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홍 시장은 지금 국민의힘 내에서 윤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정부 출범 1주년 시점에서 그런 홍 시장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윤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이 대표 입장에서는 견제와 경고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뒤이은 문 전 대통령과의 회동 역시 이 대표의 정치적인 셈법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최근 비명계로 분류되는 박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친명계가 중심을 이루던 민주당의 무게추가 비명계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진영에서 상징성이 있는 문 전 대통령과 소통을 통해 지지층을 향해 결속을 주문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단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 대표의 문 전 대통령 예방이 절묘한 타이밍에 외연 확장을 노린 전략적 행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앞서 지난 1월 이 대표는 성남FC 사건 등으로 검찰 소환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에 당시 "이 대표 중심으로 혼연일체로 하나가 돼 올해는 더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문 전 대통령의 '통합' 메시지는 이 대표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평산책방 방문 시점 역시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 의혹' 등으로 친명을 향한 비명의 공세가 지속되는 등 당내 위기 상황이 연속되는 가운데 성사된 만큼 신년 방문과 비슷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율 교수는 "문 전 대통령을 찾아가는 건 최근 돈봉투, 김남국 사태 등으로 민주당이 친명과 비명으로 갈리는 모양새가 감지되는 상황에서 상징성을 지닌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분열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 상징성을 앞세운 모습을 강조한다면 지지층에게 결집을 호소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최근 고립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대표는 돈봉투나 김남국 사태 등에 휘말릴 수 없는 만큼 당의 의제를 바꾸는 게 시급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홍 시장과의 회동을 통해 외연확장과 윤 정부 견제라는 효과를 거두고 문 전 대통령과의 소통 행보를 보이게 된다면 지지층으로부턴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