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박사 1호'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 인터뷰
"코인 획득을 불법시하는게 아냐…
FIU 혐의거래 디텍트가 핵심"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 첫 폭로 보도가 나온 게 이달 5일이다. 이후 사태는 김 의원의 더불어민주당 탈당과 국회 윤리위 회부 등으로 번지며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보도자료 배포와 김어준 씨 유튜브 출연 등으로 의혹 해명을 시도하던 김 의원은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 한다"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조언에 따라 '잠수'했다. 이렇다할 해명이 없는 가운데 에어드롭·코인배당 등 각종 보도가 쏟아지며, 의혹은 명쾌하게 정리되기는커녕 오히려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코인 의혹'을 포착한 금융정보분석원(FIU)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우리나라 1호 전산학박사인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서울 동대문구 카이스트 홍릉캠퍼스에서 진행된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코인 획득과 이체 과정으로만 언론 취재와 보도와 집중되는데 그게 포인트가 아니다. 현금인출이 포인트"라며 "코인을 획득한 과정 자체를 불법시한다기보다는, 대리인을 끼고 현금인출한 행위가 적발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문송천 교수는 "기업인이든 개인이든 자금을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고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서 인출해냈을 때, FIU 내부에서 이를 '자금세탁'이라고 한다"며 "의심되는 거래는 '혐의거래'라고 하는데 FIU는 불법자금조성이나 자금세탁행위가 아닌 것은 애초부터 혐의거래로 디텍트를 하지 않는다. 혐의거래가 적발돼 검찰에 넘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에 나선 문송천 교수는 우리나라 1호 전산학박사다. 중동고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는데도 고등학생 때 컴퓨터에 꽂혀, 문과임에도 1971년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산학과가 개설돼있던 숭실대에 진학했다. 이후 카이스트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만 24세에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4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OS와 DB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활약하고 있다.
2001년 창설된 FIU가 문 교수에게 SOS를 쳤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문 교수는 2004년 FIU 시스템의 전면 재설계에 착수했다. 문 교수는 "LG CNS를 총괄지휘하며 4개월 동안 재경부 FIU에 출퇴근했다. 마침 (집이) 과천에 있으니까"라며 "정부시스템은 3~4년에 한 번 개편하는데 (내가 설계한 FIU 시스템은) 워낙 잘 돌아가서 그 때 이후로 고치지도 않고 19년 동안 계속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 도중 문 교수는 "말로만 설명하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이 설계했던 FIU 시스템 데이터 지도의 일면을 보여줬다. 한참을 설명하던 문 교수는 한 지점을 짚더니 "여기가 FIU 전자지도의 핵심 부분이다. 혐의거래가 나오지 않느냐"며 "혐의거래를 잡아내기 위해 어떤 데이터들이 연결돼야 하는지 데이터 맵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이 앉아서 서류로 행위하고 이런 게 없다. 시스템에 따라서 자동으로 자료가 전달되고 자동검출시스템으로 혐의거래가 자동으로 디텍트되는 것"이라며 "사람이 서류 들춰보고 이런 수작업으로 (혐의거래가)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당사자 '잠수'에 의혹 보도 쏟아져 국민
혼란스럽지만…향후 사태 전망 낙관
"블록체인 세상엔 '부인불가성' 있어
사태의 진상, 투명하게 밝혀질 것"
사람이 서류로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임의로 '혐의거래'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FIU 시스템을 통해 혐의거래로 적발이 이뤄졌고, 이것이 검찰로 통보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문송천 교수는 "1000만 원 이상을 본인 또는 대리인이 현금으로 인출하는 경우가 아니면 디텍트를 하지 않는다"며 "계좌이체를 천 번, 만 번을 하더라도 그것은 아니다. 계좌이체를 해서 현금으로 뽑아내는 단계까지 갔을 때, 그 때 FIU가 디텍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남국 의원은 지난 7일, 지난해 1분기에 다섯 차례에 걸쳐 440만 원을 인출한 게 전부라고 해명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 문 교수는 "1000만 원 이상을 인출하면 자동 디텍트가 되니까 1000만 원 미만을 인출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불법자금이 아니라면 10억 원을 인출해도 상관 없지만, 불법자금을 조성한다고 가정한다면 1000만 원 이상을 인출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쪼개기 인출을 했다면 혼자 쪼갰느냐, 누가 도와줘서 쪼갰느냐"라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적발이 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공모자, 공식용어로 '대리인'이 쪼개서 인출했더라도 디텍트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쏟아지는 의혹 보도와 당사자의 침묵, 여야 정치권의 공방 속에서 국민들은 분노와 혼란에 빠져있지만, 문송천 교수는 향후 사태의 전망을 낙관했다. 지금도 대학에서 블록체인을 강의하고 있는 입장에서, 블록체인의 투명성 때문에 그 어떤 부인도 소용 없이 장차 사태의 흐름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문송천 교수는 "가상화폐 쪽에는 부인불가성(否認不可性)이라는 게 있다"며 "내가 물건을 주문해서 받았는데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 자체가 블록체인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 때 가상화폐 거래를 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몇천 원 했다'고 하는데, 분석하면 다 나온다. 못 숨기는 것"이라며 "적발이 될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 쪽은 블록체인의 특성 때문에 100% 적발된다"고 자신했다.
나아가 "워낙 블록체인이라는 게 투명하기 때문에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금방 밝혀질 것"이라며 "특히 현금인출 단계로 가면 FIU의 디텍트를 피할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평생 IT 전문가로 살아온 세계적 '석학'
"영국에선 이런 의혹 터졌다면 24시간
넘기지 않는 게 그 사람들의 전통…
우린 '4류 정치'라는게 사실인 것 같다"
문 교수는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면서 4년에 한 차례씩 돌아오는 연구년 때마다 영국으로 향했다. 케임브리지대, 에딘버러대 등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고, 유럽IT학회의 아시아대표로 활약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석학으로서 자신이 해외에서 목격한 선진국의 정치와,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우리 정치권의 움직임을 비교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문송천 교수는 "탈당이 아니라 영국에서 이런 의혹이 터졌다면 그날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났을 것"이라며 "영국에서 내가 한두 건을 본 게 아닌데,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대개 24시간 이내로 사퇴하더라. 24시간을 넘기지 않는 게 그 사람들의 전통"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러니 선진국이고 선진 정치가 아니겠느냐"며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이 있듯이 '4류 정치'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문 교수는 자신의 인터뷰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해석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평생 정치에는 한 차례도 눈 돌리지 않고 연구와 IT 계몽활동에 종사했던 자신의 발언이 정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는 듯 했다.
문송천 교수는 "내가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데 나서느냐,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라며 "그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댓글이 험해지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무슨 여당을 옹호하고 야당을 공격하는 인터뷰는 절대로 아니다. IT 전문가로 살아온 내가 여야가 어디 있겠느냐"며 "여야 정당활동을 해본 적도 없고, 정치권에 줄을 서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김남국 사태'로 인해 일각에서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형성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정치권의 '검은 돈' 조성에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문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의 특징인 '투명성'을 역이용하려는 시도는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를 막는 것 역시 기술로 해야할 일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문송천 교수는 "기술은 기술로 막아야지, 제도로 막을 수가 없다. 기술의 역효과를 방지하는 것도 역시 기술로 해야하는 것"이라며 "IT 기술이 먼저 치고나가는 것을 금융이나 법이 어떻게 따라가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블록체인도 활용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악용해서 나쁜 점도 반드시 함께 벌어진다"며 "나쁜 점이 드러났으면 그것을 블록체인으로 고쳐야지, 다른 대안이 뭐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나아가 "결국 기술이 앞서가고 사회제도는 뒤따라가는 양상은 앞으로 100년, 200년… 1000년, 2000년이 지나도 계속 벌어지면 벌어졌지, 바뀔 가능성은 없다"며 "항상 기술은 양면성이 있다. 선용(善用)하는 케이스와 악용(惡用)하는 케이스가 있기 때문에, 악용하는 케이스는 기술로 막아야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