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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망해도 나라 안망한다더니… [데스크 칼럼]


입력 2023.06.08 14:11 수정 2023.06.08 14:43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반도체 수출 40.5%↓…한국 경제도 '휘청'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한국판 현실로

삼성 홀로 분투 속…이재용 회장은 매주 1~2차례 재판에

시간없는데…사회적 논의 시급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삼성과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이 있다. 삼성의 실적이 떨어지거나 연예인이 활동이 부진하면 걱정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최근 삼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부쩍 늘었다. 삼성전자가 미·중 갈등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TV·가전 분야에서 크게 고전하면서다.


삼성전자의 TV·가전 사업은 지난해 4분기 약 8년 만의 600억원 적자를 냈고, 올 1분기 영업이익도 작년 같은 기간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반도체 부문은 1분기 4조6000억원 적자를 봤는데,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분기 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이다. 여기에 2분기도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이어져 4조원 이상 적자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초 기대됐던 하반기 실적 개선 가능성 역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져 예단이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일본도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뚜렷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업황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가 대항전식으로 진행되는 반도체 패권 전쟁 틈바구니 속 삼성 홀로 싸우는 모양새다.


문제는 삼성이 분투할수록 주변국들의 협박은 늘어나고 이는 반도체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내 수출금액 기준으로 보면,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은 56%, 비메모리 반도체 비중은 44%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달한다. 그런데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8월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지난달 40.5%까지 줄었다.


이에 따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2.1%)도 종전(2.3%)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우리 경제의 효자로 꼽히던 수출이 이제는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삼성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전인 건 "삼성이 망한다고 나라가 망하면 그게 나라냐"고 입방아를 찧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앞장 서 삼성과 반도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표적인 좌파 방송인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정책을 지적하며 위기의식을 심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퇴조와 함께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한국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내용이다. 목적이 어떻든 삼성과 반도체의 위기를 틈타 "이러다 나라 망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분명해 보인다. 어찌보면 좌우 정치적 스탠스와 상관 없이 현재 상황에선 '삼성의 실적회복이 곧 한국경제의 반등 시점'이란 인식엔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삼성에 그리 녹록하지 않다. 스마트폰에서는 애플에 밀리며 중국 업체들에 쫓기고, 메모리반도체 시장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를 모두 진두지휘할 이재용 회장은 사법 리스크 때문에 경영 활동을 하는 데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8·15 광복절 특사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서는 복권 조치가 이뤄졌지만, 경영권 승계를 위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두 회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며 매주 1~2차례씩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1심만 1년 6개월째 진행 중인 재판이 대법원까지 올라갈 경우 최소 3~4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

현재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모두 사내이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이 회장은 5년간 취업 제한 규정에 걸렸다. 조직에 위기감을 쇄신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어 총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장기화되는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를 풀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30년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 성취의 결과일 뿐이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은 8일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민간의 혁신과 정부의 선도적 전략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지정학적 이슈가 기업들의 가장 큰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고, 국가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윤 대통령의 지적대로 세계는 지금 사활을 건 반도체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뿐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도 반도체 산업에 인센티브와 기금을 동원해 전폭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금이 이 회장과 삼성에 국가적 차원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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