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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물어도 눈물 돋는 그 장면, 예측불허 ‘비공식작전’ [홍종선의 연예단상⑳]


입력 2023.07.30 09:27 수정 2023.08.05 17:30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주지훈, 할 일 다 하고도 요구 못하는 ‘머뭇거림’ 연기로 관객 서러움 울컥

하정우, 출국장 장면 비결 질문에 “진심 한 숟가락 더, 열심 한 숟가락 더”

오른쪽부터 이민준과 김판수, 하정우와 주지훈, 마치 형과 동생처럼 ‘비공식작전’ ⓒ 이하 쇼박스 제공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제작 와인드업필름·와이낫필름, 제공·배급 ㈜소박스)은 여러모로 예상, 예측, 예단을 빗나간다.


무장 세력에 납치돼 레바논 외곽에 감금된 외무부 서기관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 외무부 중동과 사무관 이민준(하정우 분)과 현지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김판수(주지훈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소재만 보면 다소 무거울 것으로 예상하기 쉬운데 영화의 리듬이 경쾌하다. 구하러 가는 사람들의 진심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웃음꽃이 터진다.


구하러 가는 사람들도 예측을 불허한다. 협상에 능한 외무부 ‘에이스’도 아니고 남의 일에도 발 벗고 나서는 ‘선한 사마리안’ 택시 운전사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각 잡히고 반듯한 사람들만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만 그린다면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구출 작전’이 아니고 ‘비공식작전’ 아닌가.


외무부 중동과 사무관 이민준 역의 배우 하정우 ⓒ

학연도 지연도 없이 자신의 실력만으로 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입성한 ‘흙수저’ 사무관 이민준, 들어오기는 했으나 아무 ‘빽’(background, 백그라운드, 뒷배·뒷줄)이 없어 승진에서도 밀리고 해외 비주류 지역이 배당된다. 21개월 만에 생사를 알려온 오재석 서기관(임형국 분)을 어떻게든 구출해서 바라고 바라던 미주 지역으로 특파될 꿈을 꾸며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행을 자원한다. 주어진 배경 없어 살아온 만큼 누구보다 임기응변에 능한 생존본능 하나 믿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 난다고 위기 속에서 이민준의 기지가 번뜩이고 의리와 인간미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택시 운전사 김판수 역의 배우 주지훈 ⓒ

그 길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김판수의 인생도 굴곡지다. 홀어머니 잘 모시고 싶은데 배운 것 없고 지닌 건 몸뚱이 하나뿐이라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제정신일 수 없는 충격과 공포 속에 1975년 종전 후 고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다 이름도 낯선 레바논까지 흘러들었다. 산전수전 겪으며 발달한 눈치와 생존력으로 밥벌이하고 있다. 1981년 레바논 통상대표부가 대사관으로 승격돼 개설할 때 물심양면 도울 만큼 선하고 그때 인연 맺은 오재석 서기관을 구하겠다고 이민준과 동행할 만큼 의리도 있지만, 초면에 나이를 속이는 건 기본 방심한 틈에 돈 가방을 노리는 양아치 기질도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엔 인간의 본성이 올라오는 법, 판수의 진가가 확인된다.


우리는 ‘끝까지 간다’ ⓒ

캐릭터 설정 자체가 부족하고 착하지만은 않은 ‘현실적’ 인물들로 설정돼 있어서 좌충우돌 구출기로 흐르기도 하지만. 이민준과 김판수, 김판수와 이민준을 맡은 배우가 하정우와 주지훈, 주지훈과 하정우다 보니 이 두 배우가 본래 지닌 유연함과 인간미, 유머가 자연스레 덧입혀지며 인물도 작품도 전혀 무리 없이 흘러가며 탄력 좋게 재미있다.


두 캐릭터 명과 배우의 이름을 앞뒤를 바꿔 두 번씩 쓴 이유가 있다. 흔히 외교관 또는 운전사가 주인공으로 세워지고 다른 인물은 조연으로 기능하도록 배치된다.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교관을 돕는 조력자는 한참 활약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빠진다. 엄청난 사건을 가로지르는 보통 사람 운전사의 활약을 그리면 공직에 있는 사람은 조·단역으로 등장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비공식작전’에서는 두 인물이 주인공이고, 두 배우가 주연이다. 김판수는 중간에 사라지는 조력자가 아니고 끝까지 택시를 몰아 오재석과 이민준을 구하는 주인공이다. 이민준은 보통 사람의 활약에 병풍 역할을 하는 공직자가 아니고 끝까지 오재석과 김판수를 구하는 주인공이다. 입은 옷은 직업에 따라 무채색 양복과 화려한 패션으로 다르지만, 남의 ‘빽’이 아니라 스스로 키운 패기와 의리와 온정으로 위기를 해결하고 임무를 완수하려는 ‘평범한 우리’로 똑같다.


액션도 ‘끝까지 간다’ ⓒ

여기까지 들으면, 영화 진짜 가볍고 두 배우도 호흡도 예능 ‘두 발로 티켓팅’처럼 티키타카가 좋은가 보다, 할 수 있다. 액션도 김성훈 감독이, 스토리에 착 붙여 자신이 연출한 영화 ‘끝까지 간다’ 제목처럼 끝까지 몰아갔다더니 영화 굉장히 재미있나 보다, 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예단은 금물이다. 두 배우의 호흡이 좋은 것도 맞고, 액션까지 끝내줘 재미있는 것도 맞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고 웃기기만 하지도 않다. ‘비공식작전’을 만든 사람들은 구하러 가게 된 이유, 출발점을 잊지 않았다. 구하는 이의 마음, 진심도 잊지 않았다.


더불어, 사람마다 뭉클, 울컥한 순간이 다르고 눈물 흘린 횟수도 다르겠지만. 절대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필자조차, 이 악물고 본 사람조차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공감 버튼’, ‘눈물 버튼’을 딩동 눌리고야 마는 장면이 있다.


영화로 확인해 봐야 할 명장면이라 스틸은 없다,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김판수의 ‘머뭇거림’ ⓒ

개인적으로 두 장면에 가슴이 쓰려 뱃속 눈물이 목을 타고 오르고, 끝내 눈가로 돋고야 말았다. 하나는 먼저, 김판수의 장면이다. 이제껏 가진 것 없는 나의 전 재산인 택시를 내놓고 누구에게나 하나뿐이어서 전부인 목숨을 걸고 민준과 재석을 도왔던 판수. 그 희생에는 공적 명분과 의리의 한 귀퉁이에 부초 같은 삶을 멈추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고픈 향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태울 유엔기에 자리가 둘뿐이라는 카림(민준과 판수가 벌이는 비공식작전의 레바논 조력단체 ‘알 이나쉬’의 제1 행동대장, 페드 벤솀시 분)의 말을 들은 판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 자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으로는 사라진,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인간계급 피라미드의 하층에서 살아온 판수는 미리 포기한다. 상처를 줄이기 위한 또 다른 ‘흙수저’ 판수의 자기방어다. 지금까지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나도 고생했는데, 내 자리 내놓으라’고 말하지 못하는 판수의 머뭇거림이 너무나 먹먹하다.


할 일은 다 하면서도 내 몫을 차지하기 어려웠고,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던 경험이 있는 이라면 쓴물이 목을 타고 오를 것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역시나 스틸은 없다,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이민준의 ‘선택’ ⓒ

다음은, 이민준의 장면이다. 판수의 포기가 착한 막냇동생의 염치 있는 처신이라면. 민준의 선택은 맏형의 결정이다. 스포일러라 상세히 적을 수 없지만, 베이루트 공항 출국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민준은 별말이 없다. 상대가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게 마치 눈빛으로 장풍을 쏘듯, 공기를 훅 밀어 두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내고 자신은 위험을 자청한다. 공직자로서 마땅한 행동이고, 특히나 외교관으로서 지녀야 할 애민 정신임이 분명한데도, 실로 감동적이다.


게다가 하정우다. ‘터널’에 갇혀서도 강아지와 친구 삼고 케이크 놓고 심(心)겨루기 하며 웃음 줄 수 있는 배우다. 어떠한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쉽게 연상이 되지만, 우리 마음을 뜨겁게 데우는 건 상상이 쉽지 않을 만큼 개성적 연기와 특유의 유머로 똘똘 뭉친 사내 중의 사내다. 그런데 상황 설명 세세히 하지 않고,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서, 눈빛만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극치로 끌어올린다. 눈시울이 뜨겁다.


하정우는 이 장면에 대해, 지난 24일 서울 북촌로 카페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날의 그 장면에 대한 회상일 수도 있다.


배우는 진심을 다해, 열심을 더해 최선을 다할 뿐 평가는 관객의 몫. 배우의 마음과 태도를 보다 깊이 읽어 주는 우리! ⓒ

“코로나로 인한 고립 등에서 인간 김성훈이 느꼈던 감정을 (그 연기) 상황에 몇 숟가락 넣으려 생각했어요.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한 마음으로 판수를 쳐다보고 오 서기관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하려 했어요.”


“연기가 는 것일 수 있어요(웃음). 농담이고요, 20년을 했는데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엄청난 계획을 짜서 했다, 그런데 아무도 몰라요, 욕을 해요. 어떤 작품은 그냥 했는데, 너무 좋았다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그 인물을 연기할 때 조금 더 진심을 한 숟가락 더, 조금 더 열심을 한 숟가락 더 넣자는 마음과 태도가 생겼습니다. 좋게 보셨다면 그래서가 아닐까 합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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