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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매너리즘, 말론 브란도, 기다림 [홍종선의 명대사㊻]


입력 2023.07.31 14:39 수정 2023.08.05 17:2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하정우가 좋은 ‘인터뷰이’인 세 가지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던 말말말

배우 하정우 ⓒ 이하 ㈜쇼박스 제공


배우 하정우는 최고의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받는 사람)로 꼽힌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어떤 질문이든 피하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온전히 정리된 내용이 없다고 해도 어떻게든 오늘, 이 순간의 생각이라도 전하려 애쓴다.


둘째, 솔직하다. 민감할 수 있는 질문,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른 이나 전체 상황에 비추어 곤란할 수 있는 답변이어도 ‘이런 얘기까지 해주네’ 싶은 부분까지 답한다.


셋째, 말을 참 맛있게 잘한다. 음식만 맛있게 먹는 게 아니라, 사골국만 잘 끓이는 게 아니라, 말을 참 맛있게 잘한다. 모든 배우, 모든 인터뷰이가 그렇진 않다. 어떤 질문에든 열심히 답하고 솔직하게 답하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쓸 말이 없는 경우가 제법 있다.


반대로 배우가 너무나 진정성 있게, 너무나 재미있게 말을 잘해도 글을 쓰기에 앞서 덜컥 겁이 난다. 내가 그 배우의 말을 글로 옮겨 평소 그가 지닌 생각과 감성은커녕 인터뷰 그날의 분위기나마 잘 전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김윤석, 송강호, 최민식, 전도연, 김혜수, 유해진, 정우성, 조우진…최근의 고민시까지, 중간의 말 줄임표(…)가 포함한 배우들까지 인터뷰어(interviewer, 인터뷰하는 사람)에게 숨돌릴 틈 주지 않고 타이핑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는 배우들이 그들이다. 영화 등의 작품에서 명대사를 만났을 때처럼, 가슴에 돌 하나를 툭 던져 파문이 일거나 작품이나 연기 얘기지만 인생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법한 명대사를 만나는 순간이다.


배우 하정우가 얼마나 말을 논리정연하게 하는지, 그 말이 즉답으로 튀어나오자면 평소 얼마나 많은 생각을 깊게 하고 사는 건지, 열 명이 훌쩍 넘는 기자를 눈앞에 두고도 어떻게 하면 그리 유연하게 스케이트 타듯 분위기를 끌어가는지를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지만. 인터뷰 당일 느낀 만큼이라도 공유하고 싶은데, 글로 전할 자신이 없다.


다만 위에 적은 세 가지 특성은 어떻게든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려 애쓰는 문장으로 일부는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느껴볼까.


‘오재석 서기관 구하기’에 나선 이민준 사무관 역의 배우 하정우 ⓒ

먼저 필자는 다음의 질문과 답에서 그가 어떤 질문에든 피하지 않고, 스스로 정답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질문이 왔으니 최선을 다해 답하겠다는 태도를 느꼈다.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제작 와인드업필름·와이낫필름, 제공·배급 ㈜소박스)에서 어떻게든 승진의 동아줄을 잡고 싶은, 그러나 사방팔방 둘러봐도 잡을 인맥이 없어서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외무부 중동과 사무관 이민준을 진정성 있게 연기한 하정우에 대한 호평이 뜨거운 가운데. 평소와 다르게 캐릭터와 작품에 접근했는지, 본인은 다름없는데 결과가 다른 것인지 물었다.


“그게 진짜 어려운데요. 우선, 매번 작품에 임하는 건 비슷하다고 봐요. 어떤 순간을 몇 초 더 강조하느냐, 어떻게 이어 붙이는가는 전적으로 감독의 영역이고, 업계에서 그것은 ‘감독의 손을 탄다’라고 보는데요. 그건 어쩌면 김성훈 감독이 저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잘 아셔서 돋보이게 해주신 부분이 아닌가. 좋은 감독의 덕목 중 하나가 디렉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건데. 그런 부분이 뛰어나신 부분이 있지 않나, (영화) ‘터널’ 때도 그랬고, ‘비공식작전’도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감독님과 대본 읽어가며 같이 수정하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어요. 모로코에서 4개월 촬영했는데, 촬영의 대부분을 거기서 했는데, 갈 데가 없어서 이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 덕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로케이션이나 환경에 도움을 받은 작품입니다.”


본인은 언제나처럼, 이날의 인터뷰에서 하정우가 말한 표현을 빌리면 “진심 한 숟가락 더, 열심 한 숟가락 더 보태 캐릭터와 작품에 임하려는 자세”로 똑같이 임했는데. 만일 유독 좋아 보였다면 그것은 감독의 공이고, 부수적으로 한 장소에 고립돼 있듯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있었던 환경의 도움이 있었다는 답변, 어디에도 자신을 내세우는 설명은 없다.


관객들이 영화 ‘비공식작전’에 대해 어떻게 볼지, 그래서 흥행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하정우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나, 어떻게든 답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모든 것들이 계획했던 대로 완벽하게 흘러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 취향 차가 있죠. 어떤 분은 재미없어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제 세 번째 연출작(‘로비’)을 놓고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하고, 콘티 작업 중인데요. 몇 안 되는 연출부도 의견이 다 갈려요. 다 솎아내고 수정, 선택하는 작업이 어려워요. 지금 ‘비공식작전’이 관객 분들의 평가를 코앞에 두고 있는데, 엄청나게 다양한 의견이 나오겠죠. (각각의 의견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어요. 다만, 앞으로 연기에 임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고 ‘깨달음의 지점’이 되는 거고라는 것 외엔, 지금은 딱 리액션하기 어려워요.”


하정우는 이 외에도 답하기 어렵거나 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면, 적어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최근이나 과거의 경험 등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왔다. 비슷한 사례를 들어 그 곤란함의 상황이나 심정을 표현했다.


여름 극장가를 달궈라, 달려라, 하정우! ⓒ

‘이런 얘기까지 해주네’, 참 솔직하다고 느낀 대목은 다른 영화와의 비교, 다른 영화에 대한 언급이 필수인 경우였다. 해외에서의 자국민 인질을 탈출시키는 이야기, ‘모가디슈’와 ‘교섭’과의 비교 질문. 영화 ‘베를린’을 함께했던 감독 류승완의 ‘밀수’, 영화 ‘국가대표’와 ‘신과 함께’ 1·2편을 함께한 감독 김용화 감독의 ‘더 문’과 2023년 여름영화 시장에 함께 나온 소감에 관한 질문. 답은 이랬다.


“저는 참 어려워요. 결정적으로 ‘교섭’을 못 봤고, ‘모가디슈’는 봤는데, 각자 취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 개인은, 어느 장면 때문에 영화가 좋고 재미없고가 아니라 영화 다 봤을 때 이거 재미있는데, 이거 좋은데, 전체를 보고 느끼는 것 같아요. 두 작품과의 비교는 예의에 어긋납니다, 저의 ‘개취’(개인적 취향)를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비공식작전’은 영화 ‘허삼관’보다 재미있다, 영화 ‘롤러코스터랑’은 비교가 힘들다, 는 가능해요. 뭐라고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싶은데, 어려워요, 죄송합니다.”


“매번 핫하고 경쟁 치열할 때, 조심스러울 때 영화를 개봉하게 되네요. 이번에 류승완, 김용화, 전작을 함께했던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의 영화와 함께 나왔어요.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고, 예의 있게 행동해야 하는, 그러한 시간인데요. 조심성이 생겼나, 내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낯설거나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더구나 올해 같은 경우는 한 작품 잘된다고 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코로나19 이전처럼 영화산업이든 극장산업이든 활력 되찾는 경쟁 구도가 되길 바라요. 예전 같으면 남 걱정을 어찌해요, 지금은 정말 특수상황인 거죠. 지난 여름 (극장가 흥행성적), 많이 아쉬웠어요. 이러다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없어지는 건가 싶어서요. 올해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정말 잘됐으면. ‘밀수’, 첫 타자부터 잘돼서 뒤의 작품들 견인해 주면 좋겠고요.”


“김용화 감독님과 통화했어요, ‘네가 왜 그 날짜에 들어오니’라고 못하지만 느껴지죠, 사실은. 당장 내일 ‘더 문’ 시사 갈거고요. (주)지훈이, 김성훈 감독 같이 있는데, (김용화 감독에게) 나오시죠~, 예전엔 가능헀지만, 그걸 못 한다 말이죠. 그래도 어제 지훈이랑 ‘더 문’ 포스터 앞에서 사진 찍어 보내드렸어요. 류승완 감독께도 오랜만에 연락드렸어요. 무대인사에 맞춰 전화 드렸죠. ‘같이 파이팅 하자!’. 류 감독님이 (영화 구력으로) 제일 대선배시고, 먼저 개봉하시니 인사드렸죠.”


“개인적으로는 무대인사 다니고 행사 많은 게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인 게 커요. 드라마 ‘수리남’ 때 관객분들 뵈었지만, 3년 반 만에 영화로 행사하니 기억이 나요, ‘아, 이랬었지!’. 그런 의미에서 감사한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곤란한 질문에 진심에 구체적 일화를 얹어 답한 뒤, 마치 그러한 비교들보다는 ‘코로나19가 풀려 일상이 정상화되고 있듯 영화시장도 본궤도에 오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넌지시 덧붙였다. 아니, 하정우의 의도가 아니라 필자의 해석인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좋으면 금상첨화겠으나 우선은 함께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전해왔다.


여름엔, 夏정우 ⓒ

말을 참 맛있게 하는 특성은 자주 출연하지는 않으나 예능에서도 확인되는 하정우의 기본 특성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심도 있거나 매우 곤란한 질문에 맞닥뜨렸을 때 더욱 빛난다. 곁에서 지켜볼 때 의도한 기교는 아니고, 이럴 때일수록 진심으로 응하자는 태도에서 발현된 결과다.


배우에게 매너리즘(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이란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 덕목인가. 어떤 배우는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얼굴이 굳어지기도 하고, ‘나한테서 그것을 보았느냐’ 아니면 일반적 질문이냐, 되묻기도 한다. 하정우는 달랐다.


“맨날 매너리즘이죠. 그럴 때면 좋아한 영화, 어렸을 때 대학교 때 봤던 영화를 다 찾아보는 편이에요. 잊힌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 감정이 소환되는 것과 비슷한, 그러한 영화들을 보면서 좀 기다리는 것 같아요. 비슷한 표정, 화술, 표현에 어떻게 변화를 줄 것인가. 다행이라고 볼 수 있는 건 ‘늙어간다’, ‘새로운 사람 만난다’라는 사건을 매일 겪고 있기는 하죠. 더불어 현재 시점에서 저의 ‘매니리즘의 솔루션’은, 그냥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집중하는 거예요, 좋아했던 영화들을 보며 숨 고르기 하고요. 지금 당장 그것이 효과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새로운 솔루션 찾아낼지도 모르겠어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하는 것이겠죠.”


“(어떤 영화들인지 묻자) ‘대부’ 좋아해요. ‘대부’ 제작기를 그린 ‘디 오퍼’라는 작품이 있는데, 많이 울었어요. 우리는 배우의 ‘카메라 앞에서의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디 오퍼’를 통해) ‘카메라 뒤에서의 모습’을 목격하게 돼서, 저에게는 진실로 다가와서 울 일이 있었어요. (배우) 말론 브란도가 (감독) 코폴라를 찾아갔어요. 갑자기 일어나더니 스태프에게 구두약 가져와라, 입에 티슈 물고

머리에 구두약 바르고, ‘이것이 내가 생각한 돈 콜레오네’라고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이 일화는) 말로 들어서 아는 건데, 그 드라마에서 똑같이 구현해 내는 거예요. 눈앞에서 목격하니 감동이 세더라고요.”


하정우의 대답은 질문을 현문으로 만든다. 이것은 필자가 14년 전 첫 인터뷰 때 느꼈던 깨달음이다. 경직되기보다 진심으로 정면 돌파하기, ‘당장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솔루션을 찾아낼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말론 브란도 얘기도 재미있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이나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사실적 표현’들에서 뒤통수를 한 대 맞는다. 세밀하고 적확한 표현에서 질문한 상대에 대한 예의, 스스로에 대한 성실이 전해온다.


이번 하정우와의 인터뷰에서 필자가 얻은 키워드는 ‘기다림’이었다. “그러한 영화들을 보면서 좀 기다리는 것 같아요”. ‘대부’ ‘디 오퍼’를 보았다가 아니라 ‘좀 기다리는 것 같아요’가 크게 들렸다. 어쩌면, 우리도 처할지 모르는, 이미 처했을 수 있는 인생의 어려운 국면에서, 솔루션은 기다림에 있는 건 아닐까.


이제 이틀을 기다리면 영화 ‘비공식작전’을 볼 수 있다. 배우 하정우뿐 아니라 감독 김성훈, 배우 주지훈뿐 아니라 촬영장에서 전깃줄 정리하던 스태프 막내까지 모든 이가 5년간 코로나19와 싸우며 만들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만들어 완성한 땀의 영화다. 액션, 웃음, 감동, 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강도와 퀄리티를 맛볼 수 있다. 여름이면 찾아오던 夏(여름 하)정우가 어김없이 올해도 왔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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