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지도부 전격 사퇴 등 친명계 압박 속 혼돈
'탕평책' 일환 지명됐던 송갑석 최고위원도 사퇴
정청래 "같은 당 의원이 자기 당대표 팔아먹었다"
원외 친명 조직에서도 '매당' 규정하고 출당 요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합리적 성향의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한데 이어, 지도부인 최고위원회에서 비명(비이재명) 성향의 최고위원들이 잇달아 사퇴하거나 사퇴를 시사하고 있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친명(친이재명)계가 가결 투표에 '해당행위'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비명계를 압박해 당의 헤게모니를 고수하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비명계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23일 지명직 최고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조정식 사무총장 등 친명계 정무직 당직자들의 사의는 수리하지 않고 있던 이재명 대표도 송 의원의 사의는 이튿날 바로 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갑석 의원은 이날 출입기자단에 발송한 메시지에서 "어제 천춘호 비서실장을 통해 사의를 표명했고 오늘 조정식 사무총장으로부터 대표의 사의 수용 의사를 전달받았다"며 "공식적인 사퇴 입장은 다음주 월요일 최고위원회 공개발언 자리에서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강선우 대변인도 언론 공지를 통해 "송갑석 최고위원이 어제 이재명 대표에게 지명직 최고위원 사의를 표명했고, 이 대표는 고심 후 오늘 사의를 수용했다"라고 이를 뒷받침했다.
이에 앞서서는 박광온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 전원이 친명계의 압박으로 전격 사퇴했다. 박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는 친명계가 가결 책임을 물어 거취를 압박함에 따라, 만 하루도 버티지 못한 채 사실상 강제로 물러나게 된 셈이 됐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체포동의안 가결 이튿날 열린 22일 최고위에서 "당원의 지지로 탄생한 최고위원이 당원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는 건 이미 신임을 잃은 것"이라며 "(거취를) 당원들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시사했다. 이에 더해 지난 3월 이 대표의 '탕평책'의 일환으로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됐던 송갑석 의원의 사의마저 수용된 것이다.
송 의원은 앞서 "탕평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르게 사람을 등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르게 민심을 청취하는 것" "무당파로 불리는 전에 없이 드넓은 바다가 우리가 들어야 할 최우선의 민심"이라는 등 당을 향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했다. 송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다음날 열린 최고위에 자리하지 않았기에 향후 거취에 이목이 집중되던 상황이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틀날인 22일 열린 최고위에선 대여 비판보다는 비명계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주를 이뤘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재차 "용납할 수 없는 해당행위"라는 발언을 꺼내들었다.
뿐만 아니라 "압도적 지지로 뽑힌 이 대표를 부정하고, 악의 소굴로 밀어넣은 비열한 배신행위"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행위에 대해서는 전 당원의 뜻을 모아 상응하게 처리될 것" "소수의 음모와 횡포, 탈선으로 잠시 민주당이 혼란스럽지만 빛의 속도로 당을 정상화시키겠다"라고 발언하는 등 비명계를 향한 겁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앞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당 지도부가 낸 첫 공식 메시지 역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부당한 정치탄압"이라며 "이 대표에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회의 가결 투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행위"라는 것이었다.
당내 강경파 일각에서는 '해당행위'란 단어의 속뜻을 두고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가결 투표한 비명계의 쿠데타를 제압했다'란 의미로까지 관측하는 시선도 나온다.
친명계 원외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 21일 체포동의안 표결에 맞춰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의 바람과 달리 '가결' 소식이 알려지자, 연단에 있던 인사는 곧바로 "제1탄 쿠데타가 윤석열 검사 쿠데타이고, 2탄은 윤석열 검사 독재와 부화뇌동하는 민주당 배신자들의 2탄 쿠데타"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절대 우리의 민주 의지를 꺾을 수 없다. 절대로 절망하고 좌절하면 안된다"라고 주문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혁신회의는 "가결표를 던진 행위를 사욕을 위해 당을 팔아먹은 '매당'행위로 규정한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혁신회의는 "(비명계를 매국노에 빗댄) 매당노는 최소 29명에서 39명"이라면서 "당신들은 민주당에 있을 이유가 없다. 서둘러 당을 떠나라"라고 하는 등 일명 '해당행위자'에 대한 과감한 정리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설훈·이상민·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을 공개 저격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 또한 비명계 명단을 공유하며 가결표 색출 작업에 나서는 등 '비명계 응징'에 팔을 걷어붙였다. 수박(비명계 의원들을 지칭하는 멸칭) 정치인을 정확하게 확인해 주겠다는 이른바 '수박감별 사이트' 또한 등장해 당 안팎의 비명계 핍박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이 와중에 정체불명의 리스트까지 횡행하면서 당 안팎의 혼란을 더하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정청래가 확인한 명단'이란 식으로 내 이름을 빌려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자는 엄중처벌할 수밖에 없다"며 "몇몇 의원들이 내게 '어떻게 된 거냐'라고 항의하는데 '나도 출처를 모르고 최초 작성자를 추적하고 있고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함께 게재된 유튜브 채널 운영자의 사과문에는 "조금 전에 올렸던 '정청래 의원이 확인한 명단'이라는 정보에 관해 정청래 의원실에서는 '그 어떤 명단도 확인한 바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다'는 연락이 왔다"며 "좀 더 신중히 확인했어야 하는데 성급히 올렸다.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딸(개혁의딸)들의 문자에 '부결을 했다'라는 답을 보내는 의원들의 '부결 인증' 움직임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급기야 당내 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살인 예고글을 올린 누리꾼이 경찰에 긴급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주당 한 의원은 체포동의안 가결 등 최근 당 분위기에 대해 "충격인 상태"라고 말했다. 비명계를 몰아가는 기류의 형성에 대해서는 "당장 영장실질심사 받을 때까지는 충격과 눈에 가시화 된 표결 결과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대표는 오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백현동 개발 비리'와 '쌍방울 대북송금' 등 의혹과 관련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