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금융사는 '헛웃음' [부광우의 싫존주의]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4.02.26 07:00  수정 2024.02.26 07:00

정부 입김 불확실성이 만든 디스카운트

자기반성 없이 주가 끌어올리라 으름장

시장 원리 거스르는 관행부터 개선해야

기업 가치 하락 이미지. ⓒ연합뉴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든 주범이 누구입니까."


정부가 우리나라 주식 시장의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표정이 엇갈린다. 증시에서는 이른바 만년 소외주로 저평가돼 왔던 금융주가 반사이익을 보게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읽히지만, 정작 업계 당사자들은 웃픈 현실이라며 냉소를 짓는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그룹은 지난해에만 14조9682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15조5000억원 대로 사상 최대를 찍었던 전년 기록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여전히 손에 꼽힐 역대급 성적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하나 같이 0.5배를 밑돈다.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주식 1주당 자기자본이 얼마나 되는 지를 보여준다.


이는 금융그룹들이 지금 당장 회사 문을 닫고 주주들에게 청산한 돈을 나눠 줘도 현재 주가의 두 배 이상을 돌려줄 수 있다는 소리다. 기업의 미래 가치는커녕 현재 몸값도 주가에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처럼 PBR이 1배를 밑도는 회사들의 가치를 현실화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들을 상대로 배당과 주주 환원을 확대하도록 압박하는 정책 등을 통해 주가를 끌어 올리겠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금융주 디스카운트를 만들어 온 당사자가 정부란 점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자기모순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금융사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되는 주요인 중 하나는 관치다. 당국의 입김이 금융그룹 최고경영자 인선에 영향을 주는 모습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우리 금융시장의 관행이다. 금융당국 수장이 은행을 방문할 때마다 대출 금리 인하와 이자 환급 등 상생 금융 보따리를 풀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시장 원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기엔 불확실성이다. 그리고 자본이 두려워하는 건 불황이 아닌 불안이다. 우리나라 금융사에 투자하려는 이들에게 금융당국의 행보는 이런 불확실성이자 불안 요인이다. 눈부신 실적에도 불구하고 금융주의 가치가 바닥을 기는 배경에는 외압의 그림자가 짙게 자리하고 있다.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실이 처음 꼬인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법에 대한 논의는 정부의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과오는 덮어둔 채 기업만 윽박지르는 밸류업 프로그램으로는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자본을 움직이는 건 막연한 구호가 아닌 분명한 보상과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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