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도시, 팔리지 않은 빈집 늘어나 ‘유령 도시’로 변해
연구기관들, 中전역에 빈집 4100만~1억3000만채 추산
광둥성 사오관, 빈집 완판하는데 무려 11년 가까이 걸려
中정부, 국유은행 대출 독려·주담대 금리 0.25%p 인하
전직 고위 관료가 지난해 9월23일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충격적 발언으로 중국 부동산 시장이 요동쳤다. 허컹(賀鏗) 전 국가통계국 부국장이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에서 열린 '2023 중국 실물경제발전대회'에서 강연을 통해 "일부 전문가가 중국에 30억명이 살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빈집이 넘쳐난다고 주장한다"면서도 "중국 인구 14억명이 다 채울 수 없을 정도로 빈집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중국이 일부 도시에서 팔리지 않은 미분양 빈집이 지천으로 널려 ‘유령도시’로 변하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신문이 지난 20일 보도했다. 부동산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부 도시는 남은 주택재고를 모두 소화하는데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미분양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광둥성 사오관(韶關)시다. 청산명령이 내려진 헝다(恒大)그룹과 바오리(保利)발전 등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역세권에 지은 고층 아파트 수십 동이 주인을 찾지 못하자 지난 춘제(春節·설날) 연휴기간 고속열차역 주변에서 귀성객을 대상으로 아파트 판매에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중국 부동산 싱크탱크인 이쥐(易居)연구원에 따르면 사오관시는 주택재고 면적을 계약한 주택면적으로 나눠 산출한 수치인 ‘주택소화 개월 수’가 지난해말 기준 무려 131개월에 이른다. 남은 주택을 완판하는데 11년 가까이 걸린다는 얘기다.
닛케이는 사오관처럼 재고주택 해소에 10년 넘게 걸리는 도시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푸젠(福建)성 진장(晉江·약 106개월)과 저장(浙江)성 저우산(舟山·85개월), 허난(河南)성 뤄양(洛陽·83개월),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79개월), 장쑤(江蘇)성 장인(江陰·72개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70개월) 등이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이들 도시뿐만 아니다.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광둥성 선전(深圳)과 같은 1선도시에서도 주택재고가 쌓여 평균 17개월이 걸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을 포함한 전국 100대 도시의 평균 소화 기간은 22개월 가량이다. 적정 수준인 12~14개월을 2배 가까이 웃돈다.
중국 부동산 위기 실체는 빈집 통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내 미분양 건물(주택·사무실·상가건물 등)의 면적이 지난해말 기준 6억 7295만㎡로 집계됐다. 이를 중국 3~4인 가구의 평균 주거면적인 90㎡로 나누면 747만채가 된다. 중국 전체 가구 수가 3억~4억 가구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1.9~2.5%에 불과해 별 문제가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다만 이미 분양이 완료됐지만 현금 흐름 문제로 완공이 안 된 주택이나 2016년 마지막 부동산 시장 상승기에 투기꾼들이 매입한 빈집들은 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 까닭에 실제 빈집은 훨씬 더 많다는 게 중국 부동산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반면 중국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추정치는 이보다는 훨씬 더 많다. 이들 기관은 중국 전역에 빈집이 4000만~1억 3000만채로 추산한다. 중국 싱크탱크인 베이커(貝殼)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8월 기준 중국 28개 도시의 빈집비율이 12.1%에 이른다. 이중 장시(江西)성 최대 도시인 난창(南昌)의 빈집비율이 20%로 가장 높다. 허베이(河北)성 랑팡(廊坊)이 19%, 광둥성 푸산(佛山)이 18%로 뒤를 이었다.
더욱이 난창과 랑팡은 인구 500만 이상, 푸산은 700만 이상의 대도시다. 이들 도시에서 다섯집 가운데 한집 꼴로 비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4대 1선도시의 평균 7%, 이들 도시보다 한 단계 아래인 2선도시는 12%, 3선도시의 빈집비율은 16%로 각각 조사됐다.
28개 도시의 평균 빈집비율 12.1%를 전체 도시가구 수(3억 4000만)에 적용하면 4100만채의 집이 비어 있다는 얘기다. 이 조사가 공개되자 빈집비율이 ‘너무 낮다’, ‘실제와 다르다’는 중국 네티즌들의 비판이 빗발치는 바람에 베이커는 일부 부정확한 데이터가 있고 내부 연구자료라며 보고서를 비공개로 돌렸다.
베이커보다 3배나 더 많은 1억 3000만채의 빈집이 있다는 추정하는 기관도 있다. 헝다그룹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시작된 2021년 10월 영국의 글로벌 연구컨설팅 업체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마크 윌리엄스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전역에 아직 분양되지 않은 아파트가 3000만채, 분양된 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아파트가 1억채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당국이 ‘부동산 버블(거품)’을 우려해 2020년 8월부터 강력한 대출규제에 나서면서 중국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거품을 걷어내고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한 조치였으나 헝다·비구이위안(碧桂園) 등 대형 업체가 디폴트에 빠지며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지방정부는 주수입원인 토지매각이 어려워 세수가 줄면서 재정상태가 급격히 악화했다.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지방정부의 부채잔액은 40조 7373억 위안(약 7517조원)에 달했다. 이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금조달 특수법인(LGFV) 부채를 포함해 중국에서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부채’가 7조~11조 달러(약 9369조~1경 4722조원)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중국 지방정부는 LGFV를 이용해 자금 조달을 해왔는데 자체 상환이 어려운 수준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방정부는 앞다퉈 주택구매 때 개인소득세 환급, 생애 첫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인하, 주택구매 조건완화 등 대책을 내놨지만 매기(買氣)가 살아나지 않았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중국 70개 도시의 기존 주택가격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떨어졌다. 지방뿐 아니라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도 주택구매 제한을 완화했지만 주택 수요가 되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부동산 화이트리스트(우량 부동산 프로젝트)를 선별해 국유은행이 대출을 하도록 부동산 시장 구제책을 내놓고 급기야 직접적인 부동산 수요 진작을 위해 중앙은행까지 동원했다. 인민은행은 이달 5일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린데 이어 20일 주담대 기준이 되는 5년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4.20%에서 3.95%로 대폭 낮췄다. 중국이 한번에 LPR을 0.25%포인트 낮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토퍼 웡 싱가포르 OCBC 통화 전략가는 “중국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금리인하가 시장에 큰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인민은행이 두차례 금리를 인하했음에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중국 내 투자 및 소비심리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지난해 12월까지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가는 등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도 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리인하 당일 상하이종합지수가 0.42% 상승에 그치는 등 중화권 증시가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싱가포르 TD증권의 알렉스 루 거시전략가는 "금리인하가 주택 투자심리를 부양할 수 있지만, 이것이 부동산 부문의 턴어라운드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시장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장즈웨이(張智威) 핀포인트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하는 중국이 직면한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의 조치”라면서도 “정책 효과를 높이려면 보다 공격적인 재정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용어 설명
중국은 공식 행정체계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주요 도시를 1~5선도시로 분류하고 있다. 국가통계국이 2005년부터 부동산 통계작성 편의를 위해 대표도시 70개를 선정해 그 규모에 따라 1·2·3선도시로 분류해 발표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廣州), 선전 등 중국의 대표적인 대도시 4곳이 1선도시다. 2선도시는 충칭(重慶)과 저장성 항저우(杭州)·장쑤성 난징(南京) 등 각 성(省)의 성도(省都)급 도시인 30개이며 3선도시는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爾木齊)·구이저우(貴州)성 구이양(貴陽)·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 등 35개 도시를 3선도시로 구분한다. 이밖에 인구수와 경제력, 소비수준을 고려해 4·5선도시로 분류한다. 다소 유동적이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