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5월 31일에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달 25일에 이뤄진 첫 번째 기자회견 이후 36일만의 두 번째 회견이다. 지난 1차 회견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기자회견으로 회자됐다. 그 이후 민 대표를 지지하는 누리꾼들이 폭증해 하이브가 압박당하는 상황이 됐다. 당시 민 대표의 기자회견 태도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지만, 극도로 불리했던 여론이 기자회견 한 번으로 일거에 뒤집힌 것도 충격이었다.
2차 기자회견에선 지난번과 민 대표의 태도가 달랐다. 지난번엔 대단히 거칠고 격정적이었다면 이번엔 비교적 차분하고 정제된 모습이었다. 1차 회견 땐 민 대표가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이었지만, 이번엔 여론의 지지도 받고 있고 바로 직전에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하이브에게 이겼기 때문에 더욱 여유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번 기자회견과 이번 사이에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당당함이다. 1차 때도 당당했고 이번에도 당당했다. 1차 때도 그 부분이 의아했다. 대표가 임원들과 부적절한 대화를 나눈 것이 드러났는데도 전혀 잘못하지 않았다는 듯이 사담이라고 일축하는 당당한 태도 말이다.
이번엔 더 의아하다. 이번엔 심지어 재판부가 문제를 적시하기까지 했다. 재판부는 "민희진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하이브를 압박해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면서 ”그와 같은 민희진 대표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고 알려졌다.
결국 뉴진스 탈취 또는 경영권 탈취 모색을 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법적으로 배임은 성립하지 않지만 ‘배신적 행위’는 된다고 나와 있다. 이러면 민 대표가 윤리적으로 잘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 민 대표가 2차 기자회견에서 밝고 당당한 태도를 보인 것이 의아하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법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윤리와 시민적 양식도 중요하다. 배신적 행위를 했으면 윤리적으로 당당한 입장이 아니다. 법적 배임은 아닐지라도 윤리적 배임에선 자유롭기 힘든 것 아닌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말은 ‘술은 마셨지만 혈중알코올농도가 처벌 기준에 못 미쳐 법적으로 음주운전죄가 아니다’라는 의미였다.
민 대표는 “내 첫 번째 신분은 어도어의 대표이사 자격”이라고 했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하이브 계열사 직원이다. 어도어와 하이브가 다른 회사이긴 하지만 계열사와 본사 관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민 대표가 어도어 대표이사를 강조한 것은, 하이브과 어도어를 분리시켜 하이브에 대한 배신 논란으로부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발급한 것 같은 느낌이다.
민 대표는 경영인으로서 보여야 하는 자세는 숫자라며 자신이 어도어에서 높은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런 성과를 냈으니 배신은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자신이 어도어 대표이사라며 어도어와 하이브를 분리시킨 다음, 어도어 매출을 올렸으니 자신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도어의 매출 성과와 이번 하이브에 대한 배신 논란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1차 기자회견 때는 배신 의혹에 사담을 내세웠는데 2차 땐 어도어 매출을 내세운 느낌이다. 양쪽 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민희진 대표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은, 하이브가 증거를 짜깁기해 자신을 모함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는데 왜 하이브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이야기가 안 들리는가이다. 그새 고소를 했는지는 모르는데 아직까지 알려지진 않았다. 민 대표는 지난 번 격정의 기자회견 직후에 고소가 아닌 화해를 이야기했었다. 이번 2차 기자회견 때 또 화해를 이야기했다. 일단 고소해서 사실관계를 밝힌 후에 화해를 하든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의아한 대목이다.
하이브에게 화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 대표는 원래부터 자기 것이 아닌 뉴진스와 어도어에 대한 ‘탈취 모색’을 그만 두고 그냥 하던 대로 하이브로부터 엄청난 대우를 받으면서 계속 일하면 된다. 반면에 하이브 입장에선 배신적 행위를 한 사람을 계열사 사장으로 두고 월급을 줘야 하는 문제다. 또 하이브 입장에선 민 대표가 뉴진스를 심리적으로 하이브로부터 떼어내 민 대표에게 일체화시켰다고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면 하이브는 자기 자산을 뺏기는 것이 된다. 앞으로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도 민 대표가 계속 자신에게 일체화시킬 거라고 하이브가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하이브는 화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하이브는 민 대표를 해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길 원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이브도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 현재 많은 누리꾼들과 뉴진스 팬들이 하이브를 비난한다는 점이 크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민 대표 해임 과정에서 뉴진스와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또한 하이브에 타격이다. 그렇다면 결국 화해인가? 하이브의 고심이 깊어질 것 같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