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연판장...한심한 집권 여당, 이러니 총선 대패
한동훈, 사과 의향 묵살 사실이라면 책임져야
원희룡, 친윤 힘으로 대표 되려는 꿈도 꾸지 마라
나경원, 韓-元 싸움 속 광이나 팔려고 해서야...
‘읽씹’(읽고 답장 안 함)이란 줄임말은 점잖은 사람 입에서 나오기 어렵다.
집권 여당의 대표를 하겠다는 사람들 입에서 어린아이들이나 쓰는, 발음 고약한 이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발음되고 있다. 이 당의 수준을 보여 주는 작태다. 그러니까 총선 대패를 당한 것이다.
당 대표 선거전 초반에는 ‘배신’이란 단어가 횡행했다. 지금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초중반인데, 한동훈이 바른 말한 것 외에 무슨 배신을 한 게 있는데, 그리고 거대 야당이 입법 폭거를 자행하고 있는 이 판국에, 이런 유치한 말로 서로 헐뜯고 X빠졌단 말인가?
그것도 이 나라 학부모들이 제 아이들을 다 보내고 싶어 하는 대학들, 학과들을 나왔다는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 이 당 노선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한때 일부 당 유명 인사들에게 호감을 느꼈던 한 사람의 지지자로서 착잡한 심정이다.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가 몰카 공작범들에게 속아 얼떨결에 명품 가방을 받은 사실이 총선에 큰 악재가 되게 생기자 사과해 보겠다고 한동훈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게 ‘읽씹’ 뭐 하는 사건의 발단이다.
당시 국힘 비대위원장 한동훈은 김건희 가방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서 보려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대통령을 향해서도 그렇게 말했었다. 김건희는 그래서 그에게 대화를 시도한 모양이다. 두 사람은 검찰 선배 부인과 후배로서 이전부터 사적 전화 통화를 자주 해 온 사이였다.
‘물의를 일으켜 부담드려 송구하다.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 사과를 하라면 하고 더 한 것도 요청하면 따르겠다.’ - 친윤측이 공개한 재구성 문자 요지
‘사과하면 책임론에 불붙을 것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사과를 했다가 오히려 지지율이 10% 포인트 빠졌다. 역풍이 우려되지만 그럼에도 사과해야 된다면 하겠다.’ - 친한 측이 다르게 공개한 문자 요지
당권 경쟁자인 원희룡과 나경원은 맨땅에서 풀 죽어 있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총선 패배 책임자’ ‘정치 초보의 실책’이라고 한동훈을 몰아세웠다. 韓은 사적 소통이라 답을 안 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대통령 부인 문제에 여당 대표 입장에서 공과 사를 따질 일이냐는 상식적인 비판이 뒤따랐다.
한동훈은 분명하게 전후 과정을 설명하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당시 대통령실과 험악한 분위기였다는 건 이제 우리가 모두 다 안다.
대통령실은 사과의 사 자도 꺼내지 말라는 태도인데, 여사가 슬쩍 전화로 “사과해야 할까요?”라고 사과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고 넘어가게 잘 부탁한다는 것인지 모를 얘기를 하니 짜증이 나 무시해 버렸다면 책임이 전혀 없지는 않다. 잘 달래서 “그래도 사과하시는 게 낫다”라고 판을 만들어 주었어야 할 중차대한 위치에 본인이 그때 있지 않았는가?
원희룡은 이 사건이 누구의 조종으로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른다면서 호재를 활용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문제는 이 사태가 친윤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고 발설돼 친윤 주자인 원희룡이 거기에 올라타고 있다는 것이다. 元은 김건희가 정말 사과할 의향이 있었다면 한동훈의 무응답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었지 않나 하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배신자네 뭐네 소리를 높인 유치한 친윤 팔이에 이어 이제 사과 묵살 팔이까지 하다가는 자기가 소중히 쌓아 온 24년 정치 자산을 다 잃게 될 수도 있다. 그의 저돌(猪突)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아 온 모습이 아니다. 원희룡은 행여라도 친윤 힘으로 대표 되려는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
나경원은 또 어떤가? ‘보수의 여전사’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이 무색하다.
국민 눈높이를 용기 있게 얘기했다고 해서 당에서 나가라고 한 게 윤석열이란 걸 알고 나경원이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 김기현 전대 과정에서의 친윤 연판장 ‘학폭’ 피해자다.
그 당사자가 이젠 가해자 편에 서서 광이나 팔려고 하는, 그가 잘 쓰는 표현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 대표 선거 때마다 나서서 자의나 타의로 연패당하는 나경원의 한계다.
사건 주동자로 지목된 대통령실은 일단 “전대에 끌어들이지 말라”라며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김기현 역전승 신화 재현을 노리다 망신당하지 않기 위한 몸 사리기일 것이다.
한동훈과 원희룡 두 사람 중 품위를 지키고 페어플레이를 하는 쪽이 당권도 잡고 대권에도 도전하게 된다는 건 상식이다. ‘읽씹’ 같은 소리는 입 밖에 내지도 말라. 듣기 정말 사납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