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코인 공습④]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가능할까…도입 목소리 높지만 '현실의 벽'

황지현 기자 (yellowpaper@dailian.co.kr)

입력 2025.05.27 06:00  수정 2025.05.27 06:00

작년 스테이블코인 거래액 2경원…결제액도 증가세

업계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해야" 주장하지만

규제 체계 부재·투명성 확보 등 숙제도

가상자산 거래소 내 '코인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한 스테이블코인이 이제 거래소 밖으로 나와 실생활로 확장됐다. 특히 달러와 연동된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투자·송금 수단으로 자리잡아가며 기존 금융 질서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이 우리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잡게 될지 주목된다. 스테이블코인의 개념부터 활용, 정책 쟁점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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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금융 환경의 실사용 자산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미국 스테이블코인 육성 전략과 실사용 사례 확대, 6·3 대선을 앞둔 정책적 관심까지 맞물리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결제·송금 활용성 급증…"원화 기반도 도입돼야"
테더사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Tⓒ연합뉴스

글로벌 시장에서 테더(USDT), 서클(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결제 및 송금 활용이 급증하면서 국내 투자자들도 이를 거래 유동성 확보와 자산 보호 수단으로 활용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페이팔,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등 주요 결제 네트워크가 스테이블코인을 실시간 거래에 활용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가 국내에 도입될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달러 기반 자산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아크인베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거래액은 15조6000억 달러(약 2경1350조원)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파이어블록스는 "스테이블코인은 분기당 400억 달러(약 55조원) 규모의 결제를 처리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기관 거래량의 1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해시드오픈리서치(HOR)도 최근 발표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과 법제화 제안' 보고서에서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했다. 보고서는 USDT, 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활용이 국내 가상자산 자본의 유출을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한국 금융 시스템과 원화의 안정성에 구조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HOR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하며, 이를 통해 핀테크·결제·자산관리 등 주요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달러 기반 자산의 침투를 최소화하고, 한국 디지털 자산 시장의 자주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외화 유출 리스크 방어·국내 생태계 강화"
(왼쪽부터) 정유신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 서병윤 DSRV 미래금융연구소장,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 이종섭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천창민 서울과기대 경영학과교수,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가 지난달 23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 서울국제금융오피스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역습: 금융 질서의 재설계' 콘퍼런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황지현 기자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블록체인 산업 관계자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될 경우 결제 수수료 절감, 자산 거래 효율성 향상, 글로벌 디파이(DeFi) 시장 내 한국 자산 유통 확대 등 다양한 긍정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더리움 확장성 프로젝트인 스크롤(SCR)의 한국 총괄인 제인 리(Jane Lee)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아무래도 국내 시장 중심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원화 가치 하락이나 자본 유출 같은 리스크를 방어하고,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은 이미 모바일 결제와 전자 금융 인프라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추고 있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있다. 리 총괄은 "한국의 모바일 결제와 금융 시스템은 이미 최고 수준이라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보완적 역할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은 국제 송금, 디파이 등에서 활용되고 있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국내 자산의 디지털 다양성과 국내 디지털 금융 생태계 강화 차원의 의미가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진 파이어블록스 한국 총괄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한국의 통화 주권과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이정표"라며 "현재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은 USDT, 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는 시장 유동성과 거래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한국 금융시장의 외환 리스크와 정책 통제력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도 동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시장 내 통화 다변화를 유도해 달러 의존을 줄일 수 있으며 통화정책에 대한 국내 당국의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고, 국내외 디지털 금융 인프라 속에서 원화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도·기술 인프라 선행 필요…"안정성과 투명성이 관건"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를 연일 갱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본점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활발해졌음에도 실제 도입 및 실행까지는 상당한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현실의 벽' 중 가장 높은 것은 제도적 불확실성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상품인지, 지급결제 수단인지에 대한 법적 정의부터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발행 주체, 준비자산의 요건, 소비자 보호 방식 등 핵심 쟁점들이 여전히 공회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역외에서 발행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유통될 경우 자본통제 회피, 자금 세탁, 암시장 확대 등 불법활동에 악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코빗 리서치 센터는 지난 26일 보고서에서 국내는 여전히 명확한 제도와 가이드라인 부재로 민간 차원 스테이블코인 실험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물론 달러 등 외화 연동형 스테이블코인도 법적 지위, 인가가 정립되지 않았다"며 "국내 기업이 관련 사업을 추진할 경우 외국환거래법이나 은행법 등 복수 구제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고, 발행사나 수탁사와 연동하려는 기업들도 비슷한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국내 관련 사업이 뒤처지고, 디지털 결제 분야에서도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보안성과 투명성 논란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금을 둘러싼 신뢰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발행사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산(미국 국채나 금, 달러 등)을 보유하고 있는 지는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감독할 수 있는 규제 체계 설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스테이블코인 관련 시장 확대가 오히려 금융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송금, 결제, 월급 지급 등으로 전반적으로 다양하게 이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을 국내에 맞게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맞춰 도입하게 되면, 사용처가 넓은 만큼 이를 규제해야하는 정부 부처도 다양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실제로 도입하고 시행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윤영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단순한 '디지털 달러'를 넘어 실물 경제 및 전통 금융과 연결된 새로운 디지털 자산으로 진화 중"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허용된 범위 내에서의 신중한 도입이 아니라 실사용 기반의 테스트베드 구축과 제도 유연성 확보를 통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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