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며칠만 기다리면 어떤 차든”…벤츠 최첨단 생산기지 ‘팩토리56’

진델핑겐(독일) =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06.01 16:00  수정 2025.06.01 17:23

S클래스부터 전기차 EQS까지 한 라인에서 조립

AGV·로봇팔이 작업자와 협업, 90분마다 포지션 순환

전 차량은 선주문 후 생산, 전용 열차로 각국 수출

태양광·빗물 재활용 등 탄소중립 설비도 직접 구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진델핑겐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56 전경. ⓒ메르세데스-벤츠

차체가 집게 모양의 로봇팔에 매달려 인형뽑기 기계처럼 공중에 떠 있다. 차량은 일정 각도로 기울어진 채 부식방지와 케이블 연결 작업을 기다린다. 작업자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서서 손만 뻗으면 된다. 무거운 부품은 자동운반로봇(AGV)이 실어 나른다. 로봇은 작업자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필요한 부품을 공급한다. 그 위로는 또 다른 로봇팔이 차체나 도어를 들어 올려 다음 공정으로 옮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찾은 독일 남부 진델핑겐의 메르세데스-벤츠 생산공장. 1915년 활주로로 사용됐던 이 부지는 벤츠가 1919년부터 자동차 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체 경찰서까지 갖춘, 축구장 30개 규모의 22만㎡ 부지로 벤츠의 최대 생산기지로 운영되고 있다.


“모든 차를 한 곳에서…벤츠의 혼류 생산 전략지”
독일 진델핑겐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56' 공장에서 집게팔 로봇들과 자동운반로봇(AGV)이 자동차 차체를 옮기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벤츠의 삼각별 엠블럼은 하늘과 바다, 땅 위에서 모두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항공과 해양 분야에서 그 상징이 완전히 실현되진 못했지만, 진델핑겐의 팩토리 56만큼은 예외다. 이곳에는 내연기관부터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SUV까지 아우르는 혼류 생산 체계가 구축돼 있다. 같은 생산라인에서 S클래스, 마이바흐, EQS 등 벤츠의 최고급 모델들이 조립된다.


땅 위에서만큼은 그 상징을 현실로 만든 셈이다. 차량별로 부품과 조립 조건이 모두 다른데도, 어떤 모델이든 며칠이면 공정에 투입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정교하게 설계된 공정과 고도화된 자동화 시스템이다. 사람과 로봇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이 복잡한 혼류 체계를 뒷받침하고 있다.


독일 진델핑겐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56' 공장에서 집게팔 로봇들과 자동운반로봇(AGV)이 자동차 차체를 옮기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공장 곳곳에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약 400여 대의 AGV가 대표적이다. 로봇들은 바닥에 그려진 라인을 따라 이동하며 작업자에게 맞춤형 부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각 작업자에게 필요한 부품을 정확히 전달한다. 일반적인 공장에서는 AGV가 가벼운 부품만 나르지만, 팩토리 56에서는 도어, 차체처럼 무게가 상당한 부품들도 이 로봇들이 실어 나른다. 사람이나 장애물을 감지하면 로봇은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 서기도 했다.


사라 길렌 벤츠 진델핑겐 공장 생산 총괄 및 매니저는 “작업자들은 90분 단위로 공정을 순환하는데 같은 작업을 반복하지 않고 다른 업무를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작업자들이 다양한 포지션을 맡으며 생산라인을 이해할 수 있어 직원의 숙련도와 생산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현장에는 인턴으로 시작해 정년까지 근속하는 직원도 많다.


독일 진델핑겐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56’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집게팔 로봇의 도움을 받아 작업하고 있다.ⓒ메르세데스-벤츠

생산공정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엔진과 차체의 결합이다. 이곳에서는 차체를 ‘신부’, 엔진을 ‘신랑’이라 부르고, 결합 순간을 ‘메리지(Marriage)’라고 부른다. 위에서 내려오는 차체와 밑에서 기다리는 엔진을 빗댄 2분 만에 완벽하게 결합된다. 담당 엔지니어는 농담 삼아 ‘주례’라고 불린다.


팩토리 56의 또 다른 특징은 수출 중심의 맞춤형 생산이다. 팩토리 56에서는 모든 차량이 선주문 방식으로 생산된다. 조립 라인 위 모니터에는 각 차량이 향할 국가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그에 맞춰 각국의 법규를 고려한 부품으로 조립한다. 이날도 ‘대한민국’이라는 문구가 떠있는 차체 한 대가 조립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성된 차량들은 공장 외부에 마련된 약 1.2km 길이의 전용 화물열차에 실려 세계 각지로 향한다. 이곳에서 조립된 차량은 곧장 선적지로 이동해 수출된다. 주문부터 생산, 운송까지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다.


독일 진델핑겐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56’ 내부. 무인운반로봇(AGV)이 차체 프레임과 부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팩토리 56은 디지털화와 친환경 설비를 결합한 미래형 생산기지로 설계됐다. 이곳은 종이 도면이나 체크리스트가 없는 ‘페이퍼리스 공장’으로 운영된다. 작업자들은 태블릿과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산정보와 작업 지시를 확인한다. 차량별 생산 경로 역시 시스템상에서 즉시 반영된다.


이는 벤츠가 자체 구축한 디지털 생태계 ‘MO360’에 기반한 것으로, 전 세계 30여 개 공장의 데이터를 통합해 생산공정을 표준화하고 품질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로써 연간 약 10t의 종이를 줄일 수 있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물리적 설계도 눈에 띈다. 팩토리 56은 기존 생산라인 대비 에너지 수요를 4분의 1 수준으로 줄였으며 이를 위해 태양광 패널과 직류 전력망, 재활용 자재가 도입됐다. 공장 지붕의 약 40%는 녹지로 조성돼 있고 나머지 면적에는 연간 전력 수요의 30%를 충당할 수 있는 태양광 설비가 설치돼 있다. 직류(DC) 기반 전력 공급망은 에너지 효율을 더욱 끌어올린다.


물 순환 구조 역시 환경을 고려해 설계됐다. 공장 옥상에는 빗물을 모아 저장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으며, 수질을 오염시키는 물과 분리돼 별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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