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방 –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주는 힘 [신은경의 ‘내 아이가 자라는 공간㊲]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6.05 14:01  수정 2025.06.05 14:01

“12살 아들, 7살 딸이 사는 집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공용 학습 공간(더 큰 방), 그리고 아들만의 침대방 겸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더 작은 방)을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남매가 모두 방에 들어가질 않네요. 왜 그럴까요?”


더 큰 왼쪽방 : 남매의 공용 학습공간 / 더 작은 오른쪽 방 : 첫째의 침대방


A 씨의 고민이었다. 아이 방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아이가 들어가기를 꺼린다면, 필자는 가구 배치 이전에 아이를 관찰해 보자고 권한다. 아이가 방에 들어가지 않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 방이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편안한 쉼터로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방을 꾸밀 때는 가구 선택이나 배치만 고민하기 전에,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진행하는 ‘도다미랑 키즈테리어솔루션’의 첫걸음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가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과 행동을 살펴보는 것부터다. 이번에 방을 새로 꾸민 한 12살 남아의 사례에서도 이런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열두 살 첫째 아이는 집안의 에너자이저다. 밝고 잘 웃으며 호기심이 많아 하루 종일 무언가를 만들고 움직인다. 상자와 테이프로 활을 만들어내고, 설명서 없이 레고로 성을 짓는 등 창의적인 활동을 즐긴다. 그러나 그 밝음 뒤에는 작은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힘들 때는 혼자 끙끙 앓다 터뜨리듯 속마음을 꺼내놓는 아이였다. 엄마가 물으면 괜찮다고 웃지만,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곤 했다.


이 아이는 감수성도, 활동 에너지도, 창의력도 높은 편이었다. 이런 아이에게는 ‘마음의 숨구멍’ 같은 공간이 꼭 필요했다. 또한 방에서 ‘여기는 놀이터야’, ‘여기는 책 보는 곳이야’, ‘여기는 공부하는 자리야’처럼 공간을 구획해주면 감정과 행동을 다르게 느끼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방은 공간심리학의 원리를 적용해 구역을 나눠 디자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매가 함께 사용했던 방을 첫째의 방으로, 첫째의 침대방을 둘째의 방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우선, 벙커 침대를 방 한쪽 벽에 배치해 ‘내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침대 옆에는 책장을 파티션처럼 두어 아늑함을 더했다. 이 책장은 단순한 수납장이 아니라 아이가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침대와 책상을 나누는 심리적 경계선 역할을 한다. 이렇게 물리적인 공간이 분리되면, 마음에도 경계가 생겨 안정감을 주기 마련이다.



ⓒ도다미네플레이스 @copyright_dodamine place

의뢰인이 이미 보유 중이던 침대는 좁은 방의 수납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벙커 침대였다. 높이가 높은 구조라서 침대 가드를 설치해 안전을 확보했다. 필자는 이 침대가 배치만 잘하면 아이에게 적합한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침대를 방 정면에 가로로 배치하고, 그 앞에 있던 5×3 책장을 눕혀서 3×5 책장으로 재배치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아지트이자 동굴인 침대로 가져와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숨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은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긴장을 풀 수 있게 한다.


책상은 창을 등지고 벽을 바라보도록 배치했다. 시각 자극에 민감한 아이에게 창밖의 풍경은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서도 외부 자극을 최소화한 학습 공간이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결과가 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은 측면으로 은은히 비춰 책상 위를 밝히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하면 밝음과 시선 분산을 동시에 잡아줄 수 있다.


또한, 책장을 침대와 책상 사이에 두어 휴식 공간과 학습 공간의 경계를 명확히 나눴다. 책상이 침대를 바라보지 않도록 시선 분리도 고려했다.


정리가 서툰 아이의 특성을 고려해 책장과 수납장에는 컬러 분류와 라벨링을 활용해볼 것을 권한다. 이렇게 하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고, 정리 자체가 놀이처럼 느껴져 정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공간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된 통제감’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아이가 자기 공간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경험은 자율성과 자신감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된다.


ⓒ비어있는 책장 3칸은 아이의 레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방이 아이가 가족과 연결되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아이는 만든 레고 작품을 거실로 가져와 자랑하며, 침대 옆 책장에 전시해 가족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방이 가족과의 소통 창구가 되면 아이의 자존감도 함께 자란다.


이 방은 단순한 방이 아니다. 이 12살 남아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쉬고, 만들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는 작은 세상이다. 이 공간에서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방은 그 여정을 든든히 지켜주는 안전한 쉼터가 되어줄 것이다.



신은경 도다미네플레이스 대표 dodamine_plac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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