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 '사법부 장악' 우려 의식한 듯
'대법관 증원법' 숙려…추진 의사는 명확
'형소법' '선거법 개정안' 등 정쟁법 산적
국민의힘 "李, 철회로 통합 의지 보여야"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 당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열어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법관 증원법)을 강행했지만, 법사위 전체회의 의결까지는 일단 속도조절에 나섰다. 새 정부 출범 초부터 '의회 독재의 서막'으로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증원법이 이 대통령의 정책공약집에 '사법부 개혁'의 일환으로 담겨 있는 만큼, 민주당은 숙려기간이 지나면 개정안을 지체 없이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사법부를 대통령의 하명기관으로 삼으려 한다"는 지적을 이어가고 있어, 대법관 증원법은 여야 정쟁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대법관 증원법의 법사위 전체회의 처리가 미뤄진 데 대해 "대통령의 의지는 오찬에서 (각 정당) 대표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반영됐다"며 "소위는 통과됐고, 전체회의는 숙려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 법사위는 지난 4일 법안1소위를 열고 김용민(대법관 30명 증원)·장경태(100명 증원) 민주당 의원의 법안을 병합·심사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대안을 국민의힘 불참 속 민주당 주도로 처리했다. 소위를 통과한 법안에는 공포 1년 뒤부터 대법관 수를 1년에 4명씩 4년간 단계적으로 증원하는 게 골자다. 현행 대법관 정원 14명보다 총 16명 더 늘려 30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입법 강행에 대해 집권 전·후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비판했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소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박범계 간사에게 '법안 상정이 부적절하다'고 했더니 '대통령께서 오늘 법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는 데 동의했다'는 입장을 전했다"며 "대선 과정 당시 이재명 후보의 말과 대통령 되고 나서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반면 박범계 법사위 1소위원장은 소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야당의 반대에도 민주당이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데 대해 "과거 19대·20대·21대 국회에서도 언제나 사법개혁 특위가 있었고 그때마다 대법관 수 증원문제는 늘 논의됐다"며 "입법적 결단만 없었을 따름이지 (대법관 증원은) 충분히 숙의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걸었다. 당초 '방탄법'으로 비판받던 대법관 증원법이 법사위 소위와 전체회의를 민주당 주도로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 대통령이 집권 초반부터 사법부 장악을 시도한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자칫 사법부 개혁 이슈가 경제·민생회복 정책 추진 의지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고려됐다는 관측이다.
다만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법 추진 의지는 여전히 확고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대법관 증원법은 사회 각계에서 대법원 개선과 개혁을 위해 오랫동안 요구했던 사항"이라며 "우리나라 인구와 소송 규모를 고려하면 대법관 14명만으로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무리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의 의지로 대법관 증원법은 일단 속도조절에 들어갔지만, 정쟁의 뇌관은 곳곳에 남아 있다.
대통령 당선시 재직 기간 동안 형사재판을 중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있는 만큼,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통과될 수 있는 정쟁법안들이 산적해 있다. 해당 법안들이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이 대통령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현충원 추념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지난 4일) 이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정쟁 법안들과 관련해) 우려의 말씀을 드린 바 있는데, 전환해주신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오늘 당장에라도 법원조직법·형사소송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철회하는 것을 보여주셔야 국민통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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