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에 낀 리베이트 거품, 환자·재정에 이중 부담
성분명 처방 도입 논의 속 “구조적 개혁” 목소리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제약사 리베이트 관행을 끊기 위한 제도적 대안으로 ‘성분명 처방’이 주목받고 있다. 의사 처방에 제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기재하면 약국에서 동일 성분의 복제약 중 두 가지 이상을 안내하고 환자가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다. 특정 제약사와 의료기관 간 유착을 차단하고 약가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반복되는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D제약 영업직원들이 전국 380여개 병원을 돌며 학술행사 지원을 명목으로 수억원을 건넨 뒤 자사 제품 처방을 유도한 정황이 공개되면서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 공정성을 해치는 구조적 문제로 리베이트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리베이트는 단순한 금품 수수가 아니다. 처방이 환자의 상태가 아닌 ‘얼마를 받았는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 건강권까지 직접 위협한다. 리베이트가 반영된 고가 약이 과잉 처방되면 약가에 거품이 끼고 이는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의 본인부담금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의약품비만 27조원에 달한다. 최근 5년간 누적 증가율은 39%에 이른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한 해법으로 성분명 처방을 제안해 왔다. 동일 성분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면 제약사의 마진이 낮아지고 리베이트를 붙일 여유 자체를 없애는 구조가 된다는 설명이다. 약국은 단지 안내자일 뿐이며, 선택권은 환자에게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약사에게 리베이트 권한을 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약사는 처방권이 없고 성분과 용량, 복용 기간 등은 모두 의사의 권한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약사는 정해진 처방 범위 안에서 조제만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을 취할 구조가 아니며, 성분명 처방은 약사의 권한 확대가 아니라 리베이트를 차단하는 구조적 개혁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성분명 처방은 여러 해외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다. 스웨덴은 매달 성분별 최저가 의약품을 지정해 약국이 해당 제품만 조제하도록 하고 영국 NHS는 성분명 처방을 원칙으로 하며 약사는 최저가 복제약을 조제해야 한다. 프랑스는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고, 브랜드 의약품을 선택한 환자에게는 추가 비용을 부담시키는 구조다.
건보노조는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입찰제, 개별 약가협상, 참조가격제 등과 함께 성분명 처방을 제도화해야 리베이트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건보재정 누수를 막고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약가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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