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 거리 최대 40% 단축...한국 쇄빙선 기술력·수주 경험 부각
러·중·미 북극 패권 다툼 본격화...정부도 해수부 TF 구성 ‘속도’
지정학 리스크·환경규제 등 과제 산적...“범부처 협력체계 구축”
지구 온난화로 북극 해빙이 가속화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최대 40%에 달하는 항해 단축 효과가 극지 전용 선박 수요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에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렸다.
1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북극항로 개척’이 국정과제로 추진되면서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쇄빙선 건조 기술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한화오션은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2008년부터 극지 전용 선박 개발을 시작해 세계 최다인 21척의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2005년 세계 최초로 양방향 쇄빙선을 수주했고 2019년에는 러시아 국영조선소의 의뢰로 쇄빙 LNG 운반선 15척을 설계·부분 건조한 경험이 있다.
북극항로는 부산항에서 출발해 베링해협과 러시아 연안의 북극해를 통과한 뒤 유럽으로 향하는 북동항로와 미국으로 들어가는 북서항로로 구분된다. 수에즈 운하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기존 남방항로보다 운송 시간이 최대 절반가량 감소한다는 점에서 주요국의 관심이 높다. 다만 두꺼운 얼음층을 깨며 전진해야 하는 만큼 쇄빙선 기술이 핵심이다.
쇄빙선은 일반 선박보다 강재 두께가 1.5~2배 두껍고 특수 장비가 다수 탑재돼 선가도 높은 수준이다.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모두 쇄빙선 건조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수주·납품 실적에서는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북극항로 개발을 부산 중심의 지역 전략과 연계해 추진 중이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뒤 부산항만공사(BPA)에는 북극항로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대통령 공약인 해수부의 부산 이전 역시 속도를 내고 있어 항로 개척과 지역 균형발전 전략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제 정세도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러시아는 북극 순찰을 위해 40척 이상의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2036년까지 18척을 추가 건조할 계획이다. 중국은 북극항로를 ‘빙상 실크로드’로 규정하고 러시아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영토 편입을 주장하며 북극에서의 자원 확보와 군사적 견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이 그린란드 통제와 쇄빙선·항만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북서항로를 상업적으로 개발한다면 글로벌 선주들의 쇄빙 선박 발주 수요는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수혜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다만 북극항로의 본격적인 상업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주요국 간 패권 경쟁도 뚜렷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극이사회의 기능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북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러시아 간 군사적 긴장이 맞서는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해상 물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북극항로와 같은 대체 항로 확보가 전략적 과제로도 떠올랐다. 북극항로가 군사·안보와 에너지 수출, 조선업 진출의 다층적 공간으로 변모한 이유다.
기후와 환경 이슈도 변수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맞춰 선박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유엔(UN)과 환경단체도 북극항로가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1위 해운사 MSC와 3위 CMA-CGM 등은 북극항로 이용을 공식적으로 배제한 상태다.
그럼에도 국내 산업계는 선제적 기술 개발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열쇠라고 보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 해빙 면적은 131만㎢로 역대 최소치를 기록했다. 이는 한반도 면적의 약 6배에 달한다.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4배 빠르게, 일부 지역은 최대 7배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북극항로의 상업적 현실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가 해운과 외교, 자원, 과학기술 등 다수의 정책 영역이 맞물렸다는 점에서 단일 부처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범부처·범산업·국제 공조를 아우르는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엄지 KMI 극지전략연구실장은 “북극항로는 다양한 분야가 교차하는 복합의제로 정책 일관성과 연계를 위해 범부처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정부·민간 연계의 통합 플랫폼과 함께 극지 항해 인력 양성, 연구선 운용 확대, 데이터 수집·분석 역량 강화와 지자체의 적극적 참여가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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