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가 최근 벌어진 간부 공무원의 금품 수수 사건과 관련해 전 직원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공직 비리의 뿌리는 골프에서 시작됐다”며 “임기 동안 골프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지방정부 수장으로서 공직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본질을 벗어난 ‘감정적 대응’이자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고착화시키는 위험한 발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공직 비리의 근본 원인은 ‘골프’가 아니라 윤리 불감증과 견제 장치의 부재다. 특정 공무원이 민간업체와의 유착 과정에서 골프를 함께 친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든 골프는 부패의 통로’라는 논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술을 마시다 범죄가 일어났다고 모든 공직자에게 음주를 금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극단적 일반화의 오류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단순히 내부 지침 수준에 그치지 않고 대중에게 ‘골프=비리’라는 낡은 프레임을 다시 각인시킨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골프는 오랫동안 ‘특권층의 전유물’, ‘접대와 로비의 수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스크린골프의 확산, 1만 원대 대중 골프장의 등장, MZ세대의 골프 인구 유입 등으로 골프는 이제 국민 500만 명이 즐기는 대표 레저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 단체들도 골프의 대중화와 건전 이미지 정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공공 골프장 확충, 청소년 골프 인재 육성 등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일부 지자체는 골프장을 지역 관광자원으로 육성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 시장의 발언은 이러한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무엇보다 정확한 데이터나 실증적 근거 없이 특정 스포츠를 비리의 근원으로 지목한 것은 매우 무책임하다. 공직자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고자 한다면 관련된 규정 강화, 이해충돌 방지 교육, 공직자 행동강령의 실효성 제고 등 시스템적 접근이 우선이다. 전체 공직자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리는 것은 마치 도둑이 들었다고 마을 전체를 감금하는 식이다.
골프는 본디 ‘신사들의 스포츠’로 불린다. 규칙을 스스로 지키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골프의 정신은 공직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야말로 오히려 공직자에게 필요한 자기 절제와 품격을 길러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골프장을 매개로 다양한 산업과 지역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한 채 골프를 범죄의 출발점으로 규정해 버린 것은 협소한 인식의 산물이다.
익산시장의 이번 결정은 자칫하면 ‘강력한 대처’가 아니라 ‘무지의 드러남’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 책임 있는 행정이란, 감정의 과잉이 아닌 정확한 원인 분석과 실효적 대안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골프를 부정부패의 상징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공직 윤리 확립과 투명 행정 구현을 위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다.
정 시장의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방향은 틀렸다. 지금 대한민국은 K-골프라는 이름으로 세계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 중심엔 골프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수백만 명의 골퍼들이 있다. 그들에게 죄를 묻는 듯한 발언은 부적절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근절해야 할 것은 골프가 아니라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책임 회피성 행정이다. 이제는 시대에 맞는 이성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부패는 골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부실한 시스템과 허술한 감시에서 시작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글 / 윤희종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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