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명 '자진출국' 완료…재입국 보장 관건
韓美 워킹그룹 가동, 제도개선 물꼬 트이나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우리 근로자 수백 명이 구금된 사태가 자진 출국으로 마무리되면서, 양국의 시선은 재발 방지를 위한 비자 제도 개선에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는 단기 파견 인력용 신규 비자 도입과 기존 출장용 B-1 비자의 탄력적 운용 방안을 놓고 긴급 협의에 착수했다.
12일 외교부에 따르면 단속 대상이 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본사 및 협력업체 직원 등 316명은 이날 애틀랜타발 한국행 전세기를 통해 귀국했다. 풀려난 우리 근로자들은 체포·구금된 지 8일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됐다.
출국 형식은 미국 이민법상 '자진 출국(Voluntary Departure)'이다. 강제 추방을 의미하는 '추방 명령(Deportation Order)'은 피한 셈이다. 다만 자진 출국한 근로자들 가운데는 미국 공장 건설이 멈춰선 기업 사정을 고려해 다시 입국해야 할 이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번 단속 이력 때문에 재입국 과정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에서 우리 측 전문 인력이 원활히 미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별도의 비자 카테고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양국은 곧바로 워킹그룹을 꾸려 신속하게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12일에는 관련 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미 의회 차원의 지원을 당부했다.
협상 결과는 긍정적이다. 사실상 우리 근로자들의 미국 재입국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셈이라 큰 문제는 아니지만 불이익은 상존한다. 정부 당국자는 이같은 우려에 "구체적 사례에 대해서는 추가로 협의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설치하는 파견 인력은 수 개월 이상 체류해야 했지만, 이에 꼭 맞는 비자가 없어 애로가 많았다. 한국 정부는 이번 계기에 맞춰 △단기 파견용 신규 비자 신설 △한국인 전문직을 위한 H-1B 쿼터 확보 등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H-1B 비자는 전문직 외국인에게 주어지지만 발급이 제한적이고 추첨제로 운영돼 받기 어렵다. 한국은 2012년부터 '한국 동반자법'을 입법을 위해 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펼쳐왔다. 별도 쿼터(E-4 비자)를 확보하려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는 이번엔 고학력 전문직뿐 아니라 숙련공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제도 신설이 장기 과제라는 점에서, 단기 대책으로는 B-1 비자의 유연한 적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번 구금 사태는 공장 설치·장비 시운전 등을 위해 미국에 파견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B-1이나 무비자 ESTA로 입국한 뒤 근로 활동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B-1은 '산업 장비 설치·유지보수'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주한미국대사관 유권해석이 있었지만, 미 이민당국은 훨씬 엄격하게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근로자가 단속 대상이 됐다.
우리 정부는 B-1 비자를 소지한 기술자의 공장 구축 활동은 인정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할 계획이다. 제도 변경 없이 해석만 유연하게 하면 기업들의 애로를 곧바로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국이 우리나라의 대규모 투자를 기대하면서도 정작 이에 걸맞은 비자 제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현실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반이민 기조를 감안하면 당초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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