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제가 한국 경제를 앞지른 이유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9.18 07:07  수정 2025.09.18 07:07

올해 1인당 GDP에서 한국은 대만에 22년 만에 뒤져

2분기 TSMC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70.2%로 삼성전자보다 10배나 높아

대가뭄 때 농업용수를 끌어다가 반도체 업체에 공급한 대만 정부의 열정

법인세든 상속세든 대만과 거꾸로 가고 있는 한국

대만 TSMC 본사 전경. ⓒ 데일리안 DB

한국인들은 대체로 중국과 일본은 경계하지만, 대만(臺灣)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왔다. 대만은 지금 중국의 침공 위협에 긴장하고 있다. 북한의 침공에 시달려 온 우리 처지에서는 일종의 동병상련(同病相憐)하고 있다. 과거엔 경제력도 그다지 대단한 것 같지 않아 “경쟁국”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실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계는 대만을 향해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에 특화된 나라” 또는 “고만고만한 중소기업들만 모인 소총부대”라는 평가했다. 대만은 중국 약진의 그늘에 가려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싱가포르·홍콩·대만)’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약했다.


그런 대만이 TSMC(대만반도체제조회사)라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업체를 앞세워 세계에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도 긴장하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추격하더니 지금은 압도적인 차이로 앞서고 있다. 올해 2분기 TSMC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70.2%로 삼성전자(7.3%)보다 10배나 높았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신주(新竹)과학단지에 본사를 둔 TSMC는 1987년 설립됐다. 설립자인 모리스 창(張忠謀)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소기업 위주의 대만이 사는 길은 다른 기업의 설계도를 받아 위탁 생산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TSMC는 고객의 주문을 받으면 단거리 선수처럼 장비·인력·자금을 총동원하는 천군만마(千軍萬馬) 서비스 전략을 펼치면서 성장했다. TSMC의 모토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이다.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애플·엔비디아·AMD·퀄컴·인텔 등 세계 IT 시장의 갑(甲)들조차 생산을 위해 TSMC 앞에 줄을 서는 형국이다. TSMC가 ‘슈퍼 을(乙)’이 된 셈이다.


TSMC는 현재 AI(인공지능) 제왕이 된 엔비디아가 아주 작은 기업일 때부터 설계한 반도체의 제조를 부탁하면 정성껏 도와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엔비디아의 경영자들은 TSMC를 방문하면 과거 자신들이 무명(無名)일 때 밤새 도와주었던 TSMC 엔지니어의 안부를 묻고 선물을 준다고 한다. 첨단 기술에 앞서 그렇게 인간적인 관계로 끈끈하게 맺어졌다.


TSMC는 설립 당시부터 노조가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러다가 애리조나 공장을 지으면서 미국의 강성 노조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본국에서는 더욱 강력하게 무(無)노조 경영을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측이 노조 설립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집중적인 검찰 수사를 벌였고 결국 노조를 설립하게 만든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그런 TSMC의 맹활약을 중심으로 대만 경제는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진격의 대만’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급기야 대만의 올해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 8066달러로 한국(3만 7430달러)을 22년 만에 제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대만이 내년은 돼야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대만의 고속 성장과 한국의 부진이 맞물리면서 시점이 앞당겨졌다. 문제는 한국이 당분간 재(再)추월하기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분석이다. 대만은 2026년에 ‘4만 달러 클럽’에 진입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3만 달러 벽에 갇힐 전망이다.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한국(2.0%)이 대만(4.3%)의 절반에도 못 미쳤는데, 올해는 한국이 0%대에 그치지만 대만은 4.5%로 격차가 확 벌어질 전망이다. 특히 8월 한 달 만의 수출액을 보면 대만이 584억 9000만 달러로 사상 처음 한국(584억 달러)을 추월했다.

한국·대만 1인당 GDP 전망. ⓒ 데일리안 박진희 그래픽 디자이너

문제는 이런 뉴스가 나와도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대만이 우리를 좀 앞질렀다고 그게 뭐 대수냐”는 식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만은 국가 신성장 핵심 사업으로 AI 반도체를 지정했다. 우리나라와 목표가 흡사하다. 대만에 밀린다는 말은 무슨 야구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미래 최대의 먹거리인 AI 반도체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대만에 끌려다닐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데도, 애당초 기업들의 국제경쟁력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지도자들이 한심할 따름이다.


한국이 대만에 밀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 모든 정책이 대만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기업을 경영하려는 의욕에 영향을 미치는 세제(稅制)부터 다르다. 법인세율만 해도 한국은 24%에서 다시 25%로 올리려는 반면, 대만은 20%다. 상속세 최고세율도 한국은 50%(대주주 할증의 경우 60%)이고 이를 고집하고 있지만, 대만은 2009년 50%에서 10%로 낮춘 바 있다.


대만은 2016년부터 “아시아의 실리콘밸리가 되겠다”라면서 AI 반도체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산업단지에 금융·세제·용수·전력 인력을 묶은 패키지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21년 100년만의 대가뭄 때 일부 지역에는 주 2회 급수를 중단하는 등 비상사태였다. 하지만 국가 생명인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논농사에 사용되는 농업용수를 끌어다가 TSMC 공장에 우선 공급했을 정도다. 우리나라 같으면 국회나 좌파매체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또 산업계가 반도체 인력 부족을 호소하자 대학에 1년이 아닌 6개월마다 반도체 전공 신입생을 뽑도록 했다. 2023년에는 여야 합의로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지원을 위한 ‘반도체법’을 통과시켜 투자와 고용을 총력 지원하고 있다. 반도체와 전기차 등 전략산업 연구개발 비용의 25%, 시설투자의 5%에 대해 세액 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서만이라도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허락해 달라는 업계의 요구를 묵살하는 한편, 오히려 노란봉투법 등으로 기업을 더 압박하고 있다. 기업들의 기여가 아니라 재정의 확장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대만은 TSMC가 AI 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다수의 혁신 기업이 쏟아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대만은 TSMC 외에 엔비디아의 AI 서버 생태계에 들어간 기업들로 폭스콘·콴타·위스트론 등 10여개 기업이 있다. 이들의 지난해 매출은 15.7%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27% 급증했다. 대만 출신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AI 패권의 핵심은 대만에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반도체 소부장 분야에서 일부 경쟁력을 갖췄으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의 협력 수준이 대만만큼 체계적이거나 긴밀하지 못하다. 오히려 갈등 관계인 경우도 많다.


대만의 정부 목표가 “중소기업들 키워 그중에서 스타 기업 탄생시키자”인 반면, 한국은 “대기업에게 수탈당하는 중소기업 보호하자”가 우선적인 정책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일종의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20~2023년)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진입률은 평균 0.04%, 중견기업의 대기업 진입률은 1.4%에 그쳤다. 중소기업 1만개 중 4곳만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 100개 중 1~2개만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얘기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순간 숱한 규제의 그물에 걸리기 때문이다. 김영주 부산대 교수의 ‘차등규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94개의 규제가 갑자기 늘고, 대기업이 되면 329개까지 급증했다.


한국은 반(半)세기 전에 이병철·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자(父子)의 과감한 결정으로 반도체 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거꾸로 정책, 일부 대기업의 전략 실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유기적 협력 미흡 등으로 인해 AI 반도체 분야에서 대만에 밀리게 되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정부의 반도체 지원책은 경쟁국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라면서 “반도체협회가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팹(Fab·반도체 제조공장) 20조원을 투자할 경우, 일본에서는 10조 8000억원의 인센티브(보조금이나 세액공제 등)를 받고 미국에서도 5조 5000억원을 받지만, 한국에서는 1조 2000억원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우리나라의 정부나 기업 모두 대만을 따라잡을 마땅한 전략이나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세금이든 노동 정책이든, 대만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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