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 약현성당(순례지)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50선㊵]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0.01 14:00  수정 2025.10.01 14:00

국가문화재 사적 제252호


10시 미사에 참례하려고 부지런히 언덕을 올랐다. 한여름 더위로 이마에 맺혔던 땀은 성당 안에 들어서니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해지고 미사의 차분함에 땀이 식는다. “옛 신자들은 순교 상황에 힘이 들었다면, 요즘은 갖가지 유혹에 힘든 세상이다. 유혹에 한 번 빠지면 더 큰 유혹에 점점 빠져들게 되니, 유혹은 시작도 하지 말라”는 신부님의 강론이 마음에 다가온다. “내가 부족하고 약하여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끝을 생각하여 하느님께 의탁하며 슬기롭게 이겨 내자”는 신부님의 말씀에 나도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미사를 마쳤다.



중림동 약현성당은 명동대성당보다 규모는 작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한국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다. 1891년 11월 9일 명동 본당에서 분할되어 서울에서 두 번째, 전국에서는 아홉 번째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1886년 한불조약이 맺어지면서 신자 수가 종현본당(현 명동본당)을 능가하면서 서소문 밖 수레골에 한옥인 약현공소를 마련하였다. 공소 설립 후 신자가 점점 늘어나 성당 건축 필요성이 대두되자, 1891년 서소문 밖 네거리가 내려 보이는 언덕 위에 대지를 매입하고 성당 건립에 착수한다. 약초가 많아 약초고개, 약현이라고 불리던 언덕이었다.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했던 코스트 신부가 맡았으며 착수 1년 만인 1892년 9월에 드디어 성당이 준공되고 1893년 약현성당이 축성되었다.


ⓒ녹음 속 성당


약현성당은 1892년에 한국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식 건축물이다. 건축 기술과 재정이 부족하던 당시에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절충해서 성당의 기본 공간과 형태를 간소하게 갖추었고, 아치형의 간결한 기둥과 둥근 스테인드글라스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명동대성당(사적 제258호)과 함께 한국 근대 건축사의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1977년 국가 문화재(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눈 오는 날의 성당 풍경


언덕 위로 종탑이 보이는 성당은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싶은 성당으로 손꼽힌다. 아담한 내부는 더욱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대 뒤 스테인드글라스에 은은히 투과된 빛은 영혼을 맑힐 듯, 혼배미사의 성스러움을 한껏 고조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성당 내부 (성전)


그런데 안타깝게도 1998년 2월 11일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성당 내부가 완전히 소실되고 종탑 일부가 훼손되었다. 화재 발생 2년 후 성당은 건립 당시의 옛 모습과 가깝게 복원되어 2000년 9월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제대 뒤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약현성당은 한국에서 최초로 사제 서품식이 거행되었던 장소이다. 1896년 4월 26일 세 명의 신학생 강도영 마르코,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강성삼 라우렌시오가 사제로 서품되고, 1년 뒤인 1897년 12월 18일에는 두 번째로 한기근 바오로, 김성학 알렉시오, 이내수 아우구스티노가 사제로 서품되었다.



지금은 큰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박해시대 때는 서소문 형장이 내려다보이던 곳으로, 영내에는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서소문 성지기념성당과 서소문 순교성지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서소문 순교자기념관


14처가 있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약현성당 전망대가 나온다. 약현성당 전망대에서는 숭례문과 그 일대의 도심을 조망할 수 있으며, 건축물이 아름다운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돌아볼 수도 있다.


그날도, 한 쌍의 젊은이는 성당 앞에 스마트폰을 장착한 삼각대를 세워놓고 둘만의 추억을 열심히 담고 있었다.


ⓒ가을 속 약현성당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청파로 447-1

전화 : 02-362-1891

주변 가 볼 만한 곳 :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덕수궁, 명동



홍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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