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시대에 피어난 신념의 불꽃, 뮤지컬 ‘데카브리’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0.09 14:01  수정 2025.10.09 14:01

19세기 러시아, 차르 체제에 저항했던 젊은 혁명가들의 봉기인 ‘데카브리스트의 난’은 실패로 끝났다. 뮤지컬 ‘데카브리’는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외투’를 모티브로, 이 역사적 사건의 좌절 이후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 청년의 엇갈린 신념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쇼노트

이야기의 중심에는 과거 혁명을 꿈꿨으나 이제는 체제에 순응하여 비밀경찰국 수사관이 된 미하일이 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쓴 금서, ‘말뚝’이 발견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뜨거웠던 믿음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그는 이제 자신의 글이 불러올 파장을 막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반면, 경찰국의 하급 정서원 아카키는 우연히 접한 ‘말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었던 그에게 ‘말뚝’은 신념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된다. 미하일의 동료 수사관인 알렉세이는 이들과 대척점에 선다. 그는 ‘말뚝’과 같은 위험한 사상이 사회의 안정을 해친다고 굳게 믿으며, 이를 뿌리 뽑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긴다.


이처럼 극은 ‘말뚝’이라는 상징적인 매개체를 통해 세 인물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흔들리며, 충돌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관객은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불쏘시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불씨가 되는 책 한 권을 보며 각자의 신념과 정의에 대해 곱씹게 된다.


‘데카브리’의 무대는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인물들의 내면과 관계에 집중한다.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의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동선은 각 인물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특별히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대립 구도가 그 빈틈을 꽉 채운다.


음악은 작품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한다. 키보드,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넘버들은 날카로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로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을 담아낸 음악은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처연하게 흐르며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뮤지컬 ‘데카브리’는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가 혼재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떤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작품은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신념의 양면성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해 담담하게 보여준다.


특히 배우들의 열연이 작품을 한층 다채롭게 한다. 미하일 역은 손유동·정욱진·정휘가, 아카키 역은 신주협·김찬종·홍성원이, 알렉세이 역은 변희상·유태율·이동수가 연기한다. 인물의 내면의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섬세한 연기력과 감정에 따라 변화하는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다. 작품은 11월 30일까지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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