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아파트 입주자대표에 인감도장 인계 거부…대법 "업무방해죄 아냐"

진현우 기자 (hwjin@dailian.co.kr)

입력 2025.10.09 10:27  수정 2025.10.09 10:27

은행 거래용 인감도장·사업자등록증 넘겨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

"정상 업무 수행 불가능 또는 곤란하게 됐다고 보기 어려워"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데일리안DB

임기를 시작한 후임 아파트 입주자대표에게 인감과 사업자등록증을 단순히 넘겨주지 않은 것에 대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임 대표로부터 인감 및 사업자등록증을 넘겨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후임 대표가 정상 업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지난달 4일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경기 남양주시 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던 A씨는 2021년 4월 B씨가 후임 회장으로 당선돼 임기가 시작됐음에도 은행 거래용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 반환 요구를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업무방해죄를 규정한 형법 314조에 따르면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앞선 1심과 2심 재판부는 A씨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차기 회장에게 인감 등을 반환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거부해 B씨가 회장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도록 했고, 이에 따라 A씨에게 업무방해의 의사가 있었다는 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앞선 1·2심 재판부와는 달리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가 위력으로 B씨의 업무를 방해하는 적극적인 방해 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단순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나 그에 준하는 소극적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에 이르러 적극적인 방해 행위와 같은 형법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A씨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지위에 관해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 B씨로부터 인계를 요구받자 단순히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인감 등의 인도를 거절한 것에 불과하다"며 "A씨가 이런 소극적 행위를 넘어서 인감 등을 이용해 회장 행세를 하는 등 B씨의 업무 수행을 적극적으로 방해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B씨가 임기를 시작한 후 무리 없이 입주자대표회의를 개최한 점 등에 비춰 "A씨의 행위로 B씨가 회장으로서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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