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틀렸다. 지구는 앓고 있다 [기후 침공④]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5.10.14 07:00  수정 2025.10.14 07:00

‘기후위기는 사기극’ 주장한 트럼프

파리협약 탈퇴 등 음모론 확산 선봉

사막에 폭우·봄 폭설 등 현실 보면

이미 병든 지구, 치료 시기 놓칠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뉴시스

“기후위기는 역사상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침투한 최대 사기극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82년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기후변화가 2000년까지 세계적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유엔 관리는 1989년에 10년 안에 전체 지구 국가들이 지구온난화(지구가열화)로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지구 냉각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다”며 “이 녹색 사기(green scam)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나라는 실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반(反) 친환경 성향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2020년 첫 대통령 재임 당시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로 자기 생각을 세계에 명확하게 알린 바 있다.


기후 위기, 정확히는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트럼프 외에도 여럿 있다. 존 클라우저, 이바르 예베르, MIT의 대기과학자 리처드 린즌, 대기물리학자 프레드 싱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에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람도, 세계 일류대학 교수도 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 심각성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또 조금씩 지구온난화 위험성을 각자 조금씩 다르게 판단하는 게 차이점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소수의 주장임에도 적지 않은 힘을 가졌다. 기후위기(지구온난화)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후위기 사기론’은 힘을 잃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 현상이 눈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막 국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는 1년 강우량의 절반에 달하는 비가 하루 동안 내려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됐다. 2023년에는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4월부터 40℃가 넘는 불볕더위가 닥쳤다.


태국 북서부 탁 지역 한낮 최고 기온은 45.4℃를 찍었고, 방콕도 42℃까지 치솟았다. 방글라데시 다카는 60년 만에 한낮 기온이 40.6℃까지 올랐다. 이곳과 국경을 맞댄 인도의 서벵골주, 비하르주, 안드라 프라데시주 등도 40℃를 넘었다.


폭염에 한 시민이 땀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한반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더운 날을 꼽으라면 항상 7월 말과 8월 초 사이였는데, 이젠 아니다. 가을이어야 할 9월도 30℃를 웃돈다. 폭염 일수가 늘고 열대야가 길어진다는 건 이제 대다수 국민이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는 “현재는 지구온난화와 함께 북반구 해수면 온도 상승기로, 최근 일어나고 있는 40°C 이상의 극한 폭염 증가 추세가 향후 5년 이상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강우 양상도 바뀌었다. 재난 수준인 시간당 100㎜ 이상 비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그만큼 피해도 잇따른다.


지난 8월 13일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간당 최대 150㎜에 가까운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주택과 도로가 침수됐다. 주민이 고립되거나 긴급 대피했다. 철도 운행도 중단했다. 경기도 김포시와 인천광역시에선 사망자도 발생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었어야 올해 4월에는 이례적인 폭설이 내렸다. 지난 4월 13일 오후 3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강원 상서(화천) 10.9㎝, 마현(철원) 9.2㎝, 방산(양구) 4.4㎝, 서석(홍천) 3.8㎝의 눈이 내렸다.


국종성 서울대 대기환경과학부 교수는 트럼프의 기후위기 사기론에 대해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단편적 판단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트럼프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 작업에 미국 정부 소속 과학자 참여를 차단한 것에 대해 현재만 생각하고 미래 가치를 배제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국 교수는 “(트럼프의 선택은) 일단 현재의 경제다. 탄소중립 등 기후위기 대응책들은 현재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며 “현 가격으로만 보면 화석 연료가 재생 에너지보다 저렴하다. 초점이 현재 이익에 맞춰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도상국들은 기후변화에 굉장히 취약하다”며 “돈이 많은 국가가 과거에 저질러 놓은 일이지만 그 피해는 대부분 기후변화에 이바지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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