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일중갈등…한일중 메커니즘 어디로
연말 개최 '3국 정상회의' 더 어려워진 분위기
"성급히 나서기보단 자연스럽게 실익 챙겨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일중정상회담에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갈등이 급속히 고조되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가에선 일·중 양국이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는 와중에도 한국과의 양자 관계는 신중히 관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이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고려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23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중국 문화여유부(문화관광부)는 지난 18일 한국 문체부 측에 오는 24일 마카오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5 한일중 문화장관회의'를 잠정 연기한다고 전해왔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발언을 지적하며 "중일한 3국 협력의 기초와 분위기를 훼손했고, 중일한 관련 회의의 개최 조건이 잠시 갖춰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에 한일중 메커니즘의 최고위 회의체인 3국 정상회의 개최가 당분간 어렵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초 외교가에서는 상반기 한국의 12·3 비상계엄 이후 이어진 탄핵정국과 하반기에 몰린 다자회의 일정 등을 고려하면 연말쯤 3국 정상회의 개최가 추진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최근 양국 갈등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전쟁 등 긴급사태)시 개입 불가피성을 언급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중국은 2013년 등장했다가 2023년 사실상 거둬들였던 공갈·협박성 외교 노선, 이른바 전랑(늑대전사) 외교를 다시 꺼내든 모양새다.
특히 '한일중 협력의 기초가 훼손됐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봤을 땐, 일중 간 갈등 상황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한일중 메커니즘도 굴러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갈등 국면과 별개로, 일·중은 한국과의 외교에서는 '관계 안정'에 무게를 두는 흐름이 읽힌다.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잇따라 진행된 정상외교가 양측 모두에 일정한 신뢰의 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11년 만에 국빈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관계 정상화'를 천명하고 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을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한중은 민감한 현안을 수면 아래로 두며 정상 간 합의한 '동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김혜경 여사와 함께 21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OR탐보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공군 1호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한국의 재래식 무장 원자력(핵)추진 잠수함 건조 지원과 한미동맹 현대화 등을 명시했음에도 중국 정부가 이를 강하게 문제 삼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핵잠 문제에 경계의 메시지는 냈지만 신중한 처리라는 원론적 입장에 머물며 사실상 '관망 모드'에 들어선 셈이다.
이 대통령은 경주 APEC 기간 다카이치 총리와도 첫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이시바 정부 시절 합의했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기조를 유지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독도와 과거사라는 변수가 상존하지만,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정면 부각하기보다 과거사와 미래 협력을 투트랙으로 관리하며 관계 안정에 방점을 두고 있다.
외교가 일각에선 일본과 중국 모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기류가 나타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다카이치 내각 출범 직후 '트럼프 변수'에 더해 중국과의 마찰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과 괜한 갈등을 키울 이유가 없다. 중국도 내년 APEC 개최국으로서 한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레드라인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현 상황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급히 나서기보다는 상황을 관망하며 자연스럽게 실익을 챙기는 편이 더 현명하다는 데 목소리를 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단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의 디에스컬레이션(긴장 완화)에 대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중재의 역할이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보단 일단 관망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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