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을 벗기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살해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2.10 08:00  수정 2025.12.10 08:00

정권 측이 수사‧재판권까지 장악하나

정적의 무력화를 통한 영구집권 책략

그 궁궐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라고?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국무회의에서 말했다.


“개혁이란 본래 뜻이 가죽 벗긴다는 것이다.”

가끔 이 말을 쓰는 사람(특히 정치인 중에서)이 있는데 들을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 대통령은 “불합리한 점을 개선해 정상화 시키려면 갈등과 저항은 불가피하다”면서 “그게, 전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걸 하지 않으면 대체 뭘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정권 편에서는 ‘개혁’을 꺼릴 이유가 없다. 개혁의 대상은 정치적 반대 그룹, 그러니까 전 정권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그때의 제도나 기구 따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革)’은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의 생 살가죽 즉 피부조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글자는 벗겨져서 무두질 된 가죽을 뜻한다. ‘가죽을 벗긴다’라는 뜻으로 쓰려면 개혁보다는 박피(剝皮)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산 채로 피부를 벗겨내면 피투성이가 되어 죽고 만다.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과업이 무슨 인신공양도 아니고 살가죽 벗기는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라니!


‘혁’은 ‘가죽’이지만 ‘고치다’ ‘바꾸다’의 의미도 갖는다. 아득한 옛날부터 그런 뜻으로도 쓰였다. 대표적으로 혁명(革命)의 혁이 그렇다. 고대 중국에서는 왕조가 다른 성씨로 바뀌는 것을 혁명 또는 역성혁명이라고 했다. 천명이 바뀐다는 의미로 쓰였다.

정권 측이 수사·재판권까지 장악하나

이 대통령이 이 말을 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추진에 대한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인상이 짙다. 상설 혁명 재판부를 설치하겠다는 뜻이다. 영구혁명의 선언이기도 하다. 정권 측이 내란으로 규정하면 내란 재판부에 맡겨진다. 그 법정이 ‘유죄’ 확인 말고 다른 어떤 기능을 가질 수 있을까?


이뿐이 아니라 ‘법 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도 꺼내 들고 있다. 판사, 검사, 또는 수사기관 종사자가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법령을 고의로 잘못 적용하거나 사실관계를 현저히 왜곡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자격정지 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수사 및 재판을 정권의 관할 하에 두겠다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


입법권 행정권은 물론 사법권까지도 통합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입법을 추진할 까닭이 없다. 이 대통령 관련 수사와 재판에 대한 감정까지 실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정권의 3권 장악 기도는 경악스러운 헌정사적 대사건이다. 재판소원제도 다시 추진한다고 들린다. ‘대법관 대폭 증원’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등 5대 사법개혁안도 신속 처리가 공언되고 있다.


정권 측은 귀환불능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간 압도적 국회 의석에 기대어 너무 많은 입법적 무리를 저질렀다. 입법권으로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을 터이다. 게다가 보수정권 및 정당이 보수정치의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망각함으로써 민주당에 독주의 판을 열어줬다.


정권 담당자들(물론 민주당도)은 한껏 거들먹거리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군중 속에서는 겁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해방감까지 느끼게들 된다. 경쟁적으로 더 큰 소리를 내면서 자기 존재와 위상을 확인한다. 그런 게 군중심리다.


‘다양하게 시도되는 이재명 방탄법’들이 아니라도 이미 그는 해방됐다. 그 많던 범죄 혐의들, 온갖 폭로와 비난들, 기괴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던 법인카드 스캔들, 잇따랐던 주변 인물들의 자살사건 등이 어느새 매스컴에서 사라져 버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해서 민주당과 이재명 당시의 당 대표는 곧바로 ‘내란죄’로 엮어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그 측근들은 내란 공범, 국민의힘은 내란 공범 혹은 동조세력으로 몰렸다. 헌법의 ‘무죄추정 원칙’은 이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다.

정적의 무력화를 통한 영구집권 책략

문재인 정권의 예에 따랐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의 ‘적폐청산 TF’와 닮은꼴인 ‘헌법존중 정부혁신 TF’가 훨씬 광범위하고 큰 규모로 조직돼 49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들의 내란 가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각 부처에 ‘내란행위 제보센터’를 설치해서 제보받겠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상호감시·고발 체제를 구축해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일가와 그 측근 세력 악마 만들기에 필요한 수사는 모두 특검에 넘기고 지금의 특검수사가 끝나면 다시 제2차 종합특검을 실시하겠다(정청래 민주당 대표 공언)는 것도 이 정권의 정권 지키기 전략이다.


현 정권의 정적(政敵) 무력화를 통한 영구집권 책략은 세계 여러 체제의 것을 짜깁기한 인상을 준다. 프랑스 대혁명 시 자코뱅이 주도한 국민공회의 공안위원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정부의 사법권 장악 등에서 배운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베네수엘라 차베스-마두로 체제가 제도개혁을 앞세워 사법부를 정권의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나 터키의 에르도안이 사법부, 수사기관, 군·경찰 등 국가기관을 대대적인 숙청과 인사권의 자의적 행사 등으로 정부 종속기관화 한 것을 참고삼았을 것 같기도 하다.


정부·여당이 내건 기치가 ‘국민주권국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라는 대원칙은 이미 1948년 제헌헌법에서 부터 명문화(당시에는 제2조)돼 있다.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그걸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상징조작이다. 이재명 정권이야말로 국민 편에 선 국민의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게 아닌가?


정지작업이 일단락되면 그다음에 시도할 것은 헌법개정이다. 민주당 정권의 공고화·영속화를 위한 개헌일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내용도 포함될 것이다. 유력 야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시키는 이유와 절차를 정권 편의적으로 고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시점인데도 이미 윤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내란행위였다는 인식이 이 정당 안에서까지 확산되고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세력의 집요한 선전전과 언론들의 정권에 대한 동조 효과라고 하겠다. 무사안일을 즐겼던 일부 보수 정치인이나 보수 언론의 속성이 본래 그렇다. 투쟁력은 없지만, 풍향에 대한 감지력은 탁월한 덕분이다.

그 궁궐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라고?

민중의 힘을 배경 삼아 정치적·사법적 압박을 계속하면 야당의 개헌저지선은 버텨내기 어렵다.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경우는 역효과가 우려돼 실행은 못 하겠지만 위협만으로도 야당을 분열시키고 혼란시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현행 헌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자기 중임이 가능하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국민이 원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민중을 앞세우면 무엇이든 가능해지는 것이 포퓰리즘 정치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에서, 21세기인 지금에도 포퓰리즘 독재정치 체제는 기승을 부린다. 한국의 정권도 그간 민중에 아부하고 군중이 결정하게 하는 포퓰리즘 정치의 확산·정착에 공을 들여왔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재미있는(?) 말을 했다.


“대통령실은 용산 시대를 뒤로 하고 원래 있어야 할 곳인 청와대로 이전한다.”

이미 보수공사가 마무리됐고, 이사도 시작된 듯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라며 청산 대상으로 삼았던 청와대를 ‘원래 있어야 할 곳’이라고 말하기가 창피하지 않은가? 제왕적 대통령의 집무공간이고 거처였던 그곳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곳이야말로 이 대통령의 권위를 세워줄 수 있는 맞춤형 궁궐이라 여겨지기 때문인가?


개헌된다는 가정 하에 하는 말이지만 이 대통령이 견제해야 할 상대는 (그때쯤엔) 지리멸렬했을 국민의힘이 아니라 당내 경쟁 세력일 것이다. 자기도 대통령이 되고 싶고 자신(自信)이 있다면 이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용인하려 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라도 되어서 장기 집권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그럴 낌새가 보이면 이 대통령이 4년 중임제 개헌을 꺼릴 수도 있겠고….


정치가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데 국민의힘은 언제 정신을 차리려는가?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시도하는 대의원제 폐지, 1인1표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가? 좌파 정치세력들이 그간 끈질기게 주장하고 실현시키고자 했던 것이 직접민주정치다. 그 제도를 부분적으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성과를 얻기도 했다. 직접민주정치란 광장민주정치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민중민주정치 혹은 인민민주정치다. 거기에 자유민주정치가 발 디딜 틈은 없다. 상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집안싸움이나 벌일 때인가?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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