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16일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철회 발표 예정
PHEV·EREV 등 대체 소비재 확대…친환경 연료 검토
전기차 성장 역대급인데 왜?…자국 업체 출혈 막는 듯
산업 성장은 불편함 동반…당근·채찍 적소에 활용해야
주차장에서 전기차들이 줄지어 충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기차 전환에 가장 급진적인 국가로 꼽히는 유럽연합(EU)이 오는 16일(현지시간)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한다. 그간 유럽 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고수해왔지만, 시장 추이와 업계의 요구를 일정부분 받아들인 결과다.
아직까지 내용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유럽 자동차 업계에서는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등 대체 선택지 허용 ▲저탄소 연료 내연기관차 판매 허용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은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앞서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유럽 주요국들은 폐지했던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최근 다시 꺼내들면서 시장에 탄력을 불어넣고 있다. 독일은 2023년 폐지했던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내년부터 재개하기로 했고, 이탈리아도 최대 1만1000유로의 세제혜택을 시행하기로 했다. 스페인 역시 지난 4월부터 폐지했던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부활시켰다.
지난해까지 주춤했던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도 올해 들어 크게 급증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유럽의 누적 전기차 판매량은 202만대로, 전년대비 26.2% 성장했다. 현재와 같은 추세를 유지하면 올해 역대 최고 판매량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장사하는 모든 제조사들은 내연기관차가 아닌 전기차와 PHEV를 앞세우며 그 어느 때보다도 열띤 신차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르노, 시트로엥, 스텔란티스 등 유럽 출신 업체는 물론 우리 업체인 현대차, 기아, 중국의 BYD까지 수입차 브랜드들의 전기차 공세도 거세다.
유럽의 폭발적인 전기차 성장을 부른 것은 단연 강도높은 규제다. 산업은 불편한 만큼 성장한다. 죄는 만큼 업계의 우는 소리가 커지지만, 빠른 성장을 촉진하고 경쟁력을 갖도록 한다. 최고의 연료로 각광받던 디젤차가 사라지고, 비싼 가격에 아무도 눈길 주지 않던 하이브리드차가 기본값으로 자리잡은 현재 상황 역시 규제가 발판이 됐다.
올해 우리 정부가 세운 친환경차 전략은 수년 전 유럽을 모티브로 잡은 듯 하다. 정부는 최근 자동차 제조사, 부품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2035년 53~61%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강도 높은 목표를 관철시켰다. 그간의 모든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에 힘썼지만, 이번 목표는 초유의 수준이다.
정부의 목표는 '순수 무공해차'를 10년동안 952만대, 연간 80만대는 팔아야 달성할 수 있다. 올해 국내 연간 전기차 판매대수가 처음으로 20만대를 넘겼음을 감안하면, 역대급 채찍을 꺼내든 셈이다. 업계에서 '사실상 내연기관차를 금지 시킨 수준이나 다름없다'는 우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급진적인 목표치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속도를 재촉할 것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정부는 EU의 강력한 규제 성과에 가려진 부작용은 살피지 못한 듯 하다. 전기차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 시점에 갑자기 규제를 완화하려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은 것일까.
강력한 정책으로 커진 유럽 전기차 시장의 뒤에는 빠른 속도로 몰락한 유럽의 자동차 산업도 함께 존재한다. 유럽 제조업의 기둥인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점유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고, 중국 등 수입 업체가 참전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유럽 국민 브랜드 폭스바겐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공장 폐쇄라는 칼까지 빼들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돈을 벌던 유럽 부품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보쉬, ZF, 콘티넨탈 등 3대 부품사는 연이어 감원을 발표하며 구조조정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은 커졌는데, 정작 자국 업체들은 내리막을 걷게 됐다는 의미다.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주요 자동차 기업을 보유한 국가로서, 우리 정부의 친환경 정책 역시 큰 영향력을 갖는다.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내세운 정부의 속내에는 단순히 한국의 전기차 시장 규모 확대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전동화 경쟁력이 함께 성장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숨어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은 유럽 대비 자동차 산업 규모가 작고, 경쟁력 낮은 업체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체력 좋은 ZF, 콘티넨탈, 보쉬는 구조조정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90% 이상이 중소업체로 이뤄진 우리나라 부품업계는 한번의 타격이 생사를 가른다. 시장이 성장 궤도에 오른 이후 유럽처럼 규제를 완화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수많은 업체가 도산한 후 일지 모른다.
유럽이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유럽 자동차 업계가 속편하게 내연기관차를 팔 수는 없다. 당장 5년 뒤 전기차로만 장사해야한다는 걱정에서 겨우 해방될 뿐, 결국 내연기관에서 점진적으로 멀어져야하고, 친환경 연료를 넣고 굴리기 위한 고민도 추가로 가져가야한다.
이미 우리 자동차 업계는 미래 승패가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에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공부가 하기싫어 우는 게 아니라, 공부를 더 잘하고 싶어 고민하는 아이에게 매를 휘두를지, 연필을 사 줄 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더 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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