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당시부터 지속된 '설화 논란'
"국민이 평가"…정부여당 여전히 '두둔'
잇따른 태도 논란에 공세 빌미만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자료를 보며 보고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장점인 거침없는 화법이 발목은 잡은 모양새다. 여러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이 정쟁으로 이어지면서 '설화 리스크'가 재점화됐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단순히 소통 과정에서 불거진 '해프닝'으로 치부하지만, '환단고기·책갈피 달러' 등 업무보고 과정에서 나타난 이 대통령의 인식·태도가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전 부처를 대상으로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불거진 설화 논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업무보고 첫 생중계'라는 타이틀에 맞춰 지난 11일부터 이뤄지고 있지만, 불과 하루 만에 '설화'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의 설화 논란은 줄곧 제기됐다. 상대 후보들은 이 대통령의 대세론을 꺾기 위해 설화 논란을 키웠지만,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주도권을 잡은 이 대통령의 대세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이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여가 지난 현재 거침없는 입담은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고, 특히 통일교를 겨냥한 '종교 해산' 발언은 지지율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여러 공식 행사를 생중계로 전환했다. 참모진들은 생중계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지만, 이 대통령은 국정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설화 논란'이 불거진 이번 전 부처 업무보고도 "국정 철학을 국민과 나누고 정책 이행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조치"라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각 부처 장관 등 관계자와 질의응답을 통해 국정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을 생중계로 공개했다. 이번 업무보고도 같은 형식으로 이뤄졌지만,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대표적인 게 유사역사학에 기반한 위서로 평가되는 '환단고기' 논쟁이다. 상고 시절에 환국(桓囯)이라는 민족국가가 동아시아는 물론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만들어진 '위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환단고기에 수록된 구절을 인용한 것만으로도 진보 진영의 비판이 쏟아졌던 사안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보다 나아가 '환단고기'가 문헌 아니냐고 캐물을 정도였다.
이 대통령이 "고대 역사 부분에 대한 연구를 놓고 지금 다툼이 벌어지는 거잖느냐"라고 말한 취지를 굳이 들여다보면, 전문 연구자와 소위 재야 사학자 간 입장 차이를 조율해 국가 역사관을 확립하자는 의미로 선해할 수도 있다. 실제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다양한 문제의식이 있고, 그런 것들을 잘 알고 있고,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올바르게 된 국가 역사관을 확립·수립·연구하는지에 대한 질문 중 하나"라고 해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야권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출신인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그분들보다는 전문 연구자의 이론·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며 '위서'라는 점을 명확히 했음에도, 이 대통령이 역사관을 강요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동안의 노력을 통해 유사역사로 정리된 '환단고기'를 이 대통령이 다시금 논쟁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면서 사회적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효은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학계에서 검증이 끝난 사안까지 다시 '논쟁거리'로 격상시키며 사회적 혼란을 키웠다"며 "대통령실은 '평가는 국민의 몫'이라고 말한다면 논란을 만들어 놓고 책임은 국민에게 떠넘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불법외화반출 방식으로 꼽히는 책갈피에 달러를 넣고 출국하는 문제를 거론한 것도 지적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해당 불법행위를 제대로 단속하고 있는지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물은 바 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불법 예방이 필요하다는 취지와 달리,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이 사장에 대한 질타가 이뤄진 탓에 질의 취지가 왜곡됐다는 점이다.
특히 이 사장은 윤석열 정부 당시 임명된 기관장이다. 해당 업무는 세관이 담당하는 탓에 답변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이 대통령의 "참 말이 길다"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느냐" 등 강도 높은 발언에 전 정부 인사 '찍어내기' 논란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실무 영역을 점검하기 위한 취지라고 해명하지만, '책갈피 달러'라는 불법 방식이 국민에게 알려져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논란과 겹치면서 비판 여론은 커지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인사 흔들기' 논란을 두고 "실용주의적인 정신으로 얼마나 실무에 있어서 강함을 보여주느냐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 혹은 언제 임명이 되었느냐의 문제는 매우 부차적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여당 일부에선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 논란에 대해 돌발적인 상황은 불가피 하지만 일부 언론이 왜곡해서 보도하고 있다고 방어하고 있다. 사실상 이 대통령의 발언은 문제없다는 것이다.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이 대통령은 생중계로 돌발적인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음에도 감수하고 하겠다는 것"이라며 "국민주권시대에 맞다고 생각하지만, 일부 언론에선 어떤 발언과 얘기를 끄집어내서 굉장히 왜곡해서 보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양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른바 거침없는 입담은 특히 선거에서 시민의 호응을 끌어내는 등 효과를 거뒀지만, 반대로 논란을 불러오고 공세의 빌미를 제공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었다. 현재 대통령실과 여당이 이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없다고 방어한 것도 지난 대선에서 줄곧 반복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커피 원가 120원' 발언 논란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한 "그런데 뭐 어쩌라고요" 등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에선 "국민은 이런 흑색선전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잇따른 설화 논란과 상대 후보들의 공세에도 대세론이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후보와 대통령의 위치는 다른 만큼, 향후 '설화 논란'이 국정 운영과 지지율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의 설화 논란이 처음 불거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이미지가 고착화됐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대선 당시 '일을 잘하니까'라는 이미지가 논란을 덮었다면, 현재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원하는 국민 입장에선 대통령의 거친 언행이 자칫 국정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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