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전·입스 모두 극복’ 변화 망설이지 않은 이율린 [인터뷰]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5.12.22 08:47  수정 2025.12.22 15:49

이율린.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율린(23, 두산건설)은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를 거치는 등 촉망받는 유망주로 프로에 데뷔했으나 숱한 좌절과 역경을 마주해야 했다.


골프는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고 급기야 입스(특정 동작을 수행할 때 갑자기 몸이 경직되거나 떨리는 현상)가 찾아와 티샷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옥이라 불리는 시드전을 2년 연속 경험했고 그때마다 꿋꿋하게 마음을 다잡아 정규 투어 무대로 돌아왔다.


마침내 3년 차인 올해 그토록 바라던 생애 첫 우승에 도달했다. 과정 또한 극적이었다. 마지막 18번홀 버디 퍼트로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었고 무려 5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팔을 번쩍 들어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율린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매니지먼트사인 넥스트크리에이티브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율린.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Q : 골프를 언제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에서도 2년 몸담았고 무척 촉망받는 유명주였는데.


이율린 : 초등학교 5학년 때 고모부의 권유로 골프를 접했다. 시작했을 때부터 골프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스코어가 좋으니 주변에서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무엇보다 ‘잘한다, 잘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게 있지 않나. 아마도 아마추어 시절이 골프 인생에서 가장 재밌고, 열심히 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국가대표 합류도 극적이었다. 당시 코로나19 시기였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면 바로 프로 턴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출전할 수 있는 마지막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를 통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설 수 있었고 2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날 인터뷰에는 이율린의 부친도 자리를 함께 했다. 둘은 단순한 부녀지간이 아니다. 부친은 이율린이 골프채를 잡은 순간부터 늘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며, 프로 선수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모든 대회에 함께 하고 있다. 과연 부친은 딸이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이율린 부친 : 처음에는 취미로 골프를 시키려고 했다. 4개월 정도 배웠고 라운드도 7~8번 정도 나갔을 즈음, 군산CC에서 곧바로 88타를 치더라. 그때 레슨 코치가 이야기를 했다. 선수로 키우시라고.



Q : 이후 국가대표 생활을 마무리한 뒤 2022년 프로턴을 했고, 2023년 정식으로 1부 투어에 데뷔했다. 당시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다. 신인왕을 수상한 김민별을 비롯해 황유민, 방신실, 그리고 올해 2승을 거둔 고지원 등이 데뷔 동기다. 루키 시즌 부담이 컸을텐데.


이율린 : 부담보다 스스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냐하면 꿈의 무대이기도 했고, 지금껏 이 무대서 뛰기 위해 골프를 했다는 생각을 하니 주변의 시선보다 나 스스로 ‘더 잘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앞섰던 1년 차였다.


이율린.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Q : 데뷔 당시에는 이지현7로 활동했다. 이후 2년 차를 맞이한 지난해 이율린으로 개명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름의 뜻도 궁금하다.


이율린 : 프로에 오니 이지현이라는 이름이 3명이 있었다. 너무 흔하다는 느낌이었고, 이름 뒤 숫자가 붙으니 부진한 성적과 연관이 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개명했다. 법률 율(律)에 맑을 린(潾)이다.



Q : 올 시즌 전까지 성적 면에서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루키 시즌과 지난해 시드전을 치렀다. 흔히 선수들은 우승 경쟁보다 시드전 가는 것이 더 큰 부담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2023년 시드전에서 2위, 작년에는 1위였다.


이율린 : 국가대표 선발전 때도 그랬고, 시드전도 그렇고 압박감이 있는 대회에서 성적이 좋더라. 다른 이들이 긴장할 때 상대적으로 덜 긴장하는 것 같다. 무대 체질이라고나 할까.



Q : 우여곡절은 이뿐만 아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드라이버 입스가 왔다고 하던데, 선수 입장에서 매우 큰 시련이었을 것 같다.


이율린 : 지난 시즌 초반 페럼CC에서 열린 ‘E1 채리티 오픈’으로 기억한다. 당시 1라운드서 순항을 하며 자신감이 막 붙었을 때였는데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했다. 그 이후부터 드라이버샷을 치는 게 두려워졌다. 두 달 가량 입스를 안고 있다가 매니지먼트사인 넥스트크리에이티브 소개로 김혜동 코치님을 만났다.


코치님을 만나고 처음부터 뜯어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함께 했다. 입스를 안은 선수치고는 꽤 빨리 극복했다고 하더라. 심리적인 부분, 기술적인 부분, 모두 손을 봐주셨다. 지금의 드라이버 샷의 동작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율린.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Q : 사실 올해 상반기에도 성적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실력은 도망가지 않는다. 아직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했다더라. 그리고 가을이 찾아왔고 첫 우승에 도달했다. 무려 5차 연장 승부였고, 상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박지영이었다. 압박이 상당했을 텐데.


이율린 : 이렇게 말하면 살짝 멋이 없을 수도 있는데 당시 목표는 3위 이내였다. 시드 유지가 급선무였던 상황이었고, 3위 이내 진입 시 시드전을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18번홀에서 극적으로 버디 퍼트를 하며 연장전이 확정됐다. 그때 속으로 ‘시드전을 안 가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편하게 연장전에 임했던 것 같다.



Q : 우승 후 달라진 점을 꼽자면?


이율린 : 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룸으로써 그 다음 2차 목표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주변에서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 사실 이전까지 SNS의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면 응원 반, 걱정 반이었는데 이제는 축하의 글로 채워져있다. 모두 감사드린다.



Q : 프로 3년 차를 보내며 적지 않은 시련과 마주했으나 그때마다 변화를 시도했다. 개명도 하고 입스를 고치기 위해 코치도 바꾸고, 그리고 올해에는 두산건설 골프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율린 : 두산건설과 함께 한 뒤 행사, 촬영 일정을 하며 자연스레 언니들, 동생들과 자주 접한다. 특히 대회장에서 만나다 보면 이야기할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데 배울 점도 많고, 의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소속감을 느낀다.


이율린의 부친도 한 마디 거들었다.


이율린 부친 : 스폰서와 선수의 표면적 관계는 금전적인 것과 광고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두산건설 골프단을 이끄는 오세욱 상무님의 경우 코치를 워낙 오랫동안 하셨다 보니 선수들의 마음이 어떤지 잘 파악하신다. 특히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끌어 올려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신다.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면 대회장 코스를 함께 돌며 현재 선수에게 필요한 부분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 율린이 뿐 아니라 소속 선수들 대부분의 올해 성적이 좋았다.


이율린.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Q : 소문난 절친인 황유민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대표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황유민이 LPGA 투어로 가며 볼 수 있는 시간이 없겠다.


이율린 : 그렇지 않아도 최근 유민이와 괌 여행을 함께 했다. 골프도 치고, 수영도 하고, 해양스포츠도 즐겼다. 내가 골프백을 가져가지 않아 대여해주는 골프채로 쳤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민이에게 졌다.



Q :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제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다가올 전지훈련서 개선하고 싶은 점, 그리고 2026시즌 목표가 있을까.


이율린 :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그린적중률(2025시즌 68.05%, 전체 70위)을 높여야 한다. 기사를 보니 우승자 가운데 이 부문 평균 이하는 나 하나더라. 퍼팅도 개선하고 싶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는데 심리적인 부분이 크기 때문에 더 가다듬고 싶다.


내년 시즌 목표는 다승이다. 후원사인 두산건설 대회에서의 우승이라면 더욱 좋겠고, 10월에 늘 성적이 좋았는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에도 우승을 추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이율린은 어린 시절 미술영재 아카데미에 선발됐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탁월하다. 골프 선수 이전의 꿈도 화가였을 정도다. 우승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세리머니 장면을 그려달라 부탁했다.


이에 이율린은 “그러고 보니 내가 나를 그려본 적은 없었네”라며 스윽스윽 펜에 생명을 불어넣어 금세 자신의 모습을 완성했다.


이율린.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율린이 그린 이율린. ⓒ 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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