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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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하게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속이 뒤틀린 채 버스에 올라타 고향으로 향하는 도영(김가희 분). 출발 직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속이 부대끼고, 공기마저 무겁다. 그런데 이번 여정엔 예상치 못한 ‘승객’이 탑승한다. 초등학생 시절, 자신의 몸 때문에 놀림받았던 기억과 함께 남아 있는 첫사랑 용화(이학주 분)다.
도영은 가능한 한 시선을 피하고, 앉은 자세도 움츠려가며 존재감을 지우려 애쓴다. 하지만 버스 환경은 끊임없이 도영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짐을 선반 위에 올려달라는 할머니의 부탁,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중심을 잃은 몸, 그리고 쏟아지는 시선, 옆좌석 남자의 원치 않는 다이어트 훈수까지 이어지며, 카메라는 도영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과장 대신 현실감 있게 포착한다.
혹시 자신을 알아보지는 않았을지 손거울로 뒷좌석을 슬쩍 바라보다 용화와 눈이 마주치고 만다. 급기야 배까지 아파오는 상황 속, 용화는 도영을 알아보고 예전 일들을 추억하며 말을 건네 오기 시작한다.
도착 직전까지 도영은 대꾸할 힘도 없는 상태로 버텨내고,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숨을 고른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오자, 용화가 그 자리에 서서 도영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이 단순한 설정을 다큐멘터리풍 내레이션과 리얼한 리듬감으로 확장한다. 익살스러운 리포팅 톤의 내레이션은 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도영이 평소 어떤 시선에 노출되어 살아왔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뚱뚱했기 때문에 놀림받았다는 경험이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도영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치다.
이에 도영에게 용화는 그저 첫사랑이 아니라, 과거의 시선에 갇혀 있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기 때문에 숙취에 시달려 엉망인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다. 이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감정적인 해소나 극적인 화해를 선택하지 않는다. 가희는 끝내 자신을 부정하고 용화는 사람을 착각한 것 같다며 사과를 건넨다.
도영의 이 우스꽝스러운 하루의 소동극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끝난다. 그러나 그 아무 일도 아닌 하루가, 어쩌면 도영에게는 가장 오래 남는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다. 러닝타임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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