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운명 가르는 건 법리 아닌 태도
해법은 대응 방식에 있다는 오랜 교훈 상기해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연합뉴스
“이익을 내는 기업의 영업 활동을 이렇게까지 제약하는 게 맞는 지는 고민이 남는다.”
얼마 전 한 정치권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지난해 11월29일 쿠팡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발생한 이후 한 달 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쿠팡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와 이틀의 6개 상임위 연석 청문회를 거치며 전방위적 압박을 받았다.
향후에는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31일 쿠팡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처럼 쿠팡 사태는 좀처럼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런 만큼 정치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이자, 그 기업에 몸담은 수많은 노동자와 협력사의 생계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지점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결국 논란을 키우고 있는 건 쿠팡의 태도다. 쿠팡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 내내 진정어린 사과보다는 모르쇠와 애매한 해명으로 대응해왔다.
청문회에서도 명확한 책임 주체나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보다는 원론적 설명이 반복됐고, 이는 국민적 분노를 오히려 증폭시켰다.
특히 지난 12월30일~31일 진행된 연석 청문회에서는 그 '태도'가 결국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는 앞선 국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동문서답 전술 대신 때때로 언성을 높이고 책상을 두드리는 등 보다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또 '꼼수 보상안'이라는 비판을 받는 5만원 쿠폰 보상안에 대해서도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맞섰다.
또 지난 12월25일 쿠팡은 언론을 통해 유출자를 접촉했으며, 유출자가 3300만명 개인정보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명분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범행에 사용된 데스크톱 하드 드라이브와 노트북 등 관련 장비를 모두 회수했다는 점을 함께 공개하며 추가 피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범석 의장 지키키'도 계속됐다. 최고 의사결정자인 김 의장의 청문회 불참 이유에 대해 "내가 책임자"라고 답하며 엄호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쿠팡의 이 같은 태도는 계속해서 쿠팡을 향한 '괘씸죄'를 더욱 키우고 있다. 각 사안에 대한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쿠팡이 정말 한국 시장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게 맞는가'라는 의문만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쿠팡 사태의 해법은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초기 단계에서 보다 이른 사과와 투명한 사실 공개, 책임 주체에 대한 명확한 설명, 그리고 구체적인 보안 강화 계획을 내놨다면 논란이 이 정도로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개별 기업에 대한 압박이 지나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쿠팡이 더 강하게만 나오니까 이런 의견도 내기 조심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금 상황에서 쿠팡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 기업들의 오래된 행동 양식이다.
숱하게 일어난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SKT, KT 등 수많은 기업들이 어떠한 자세를 취했는지를 돌아볼 시간이다. 기업이 실수를 했을 때 가장 빠른 출구는 ‘법리 싸움’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라는 수없이 반복된 교훈을 되새길 때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뒤따른다면, 정치권도 압박 일변도의 대응에서 한 발 물러설 명분을 찾을 수 있다.
쿠팡의 퇴로를 막고 있는 것은 규제 그 자체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라는 점을 쿠팡이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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