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재현과 현대적 기대치 사이의 간극, 뮤지컬 ‘슈가’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1.13 13:42  수정 2026.01.13 13:50

2월 22일까지 한전아트센터

술이 금지되고 빵이 사라진 시대, 1930년대 미국 시카고. 거리에는 총성이 울려 퍼지고 경제 대공황의 그늘이 짙게 깔린 이 비정한 도시는 뮤지컬 ‘슈가’(Sugar)의 시작점이다. 한전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대공황이 세계를 강타하고, 금주법이 시행되던 삭막한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의 소동을 희극적으로 풀어낸다.


ⓒPR컴퍼니

원작은 마릴린 먼로 주연의 고전 코미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1959)다. 197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작품을 이번에 처음 한국 무대로 옮겨왔다. 갱단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면서 쫓기게 된 두 가난한 악사 조(죠세핀)와 제리(다프네)가 추격을 피하고자 여장을 한 채 여성 밴드에 숨어드는 설정은 원작의 핵심적인 코미디 장치이며, 이번 공연 역시 이 서사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택하고 있고, 갱단에 의해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극은 전체적으로 정통적인 코미디 문법을 따르고 있어 어느 정도 웃음을 보장한다. 여장 남자라는 설정 안에서 발생하는 상황적 유머와 캐릭터의 개성을 살려내면서 오는 웃음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제리와 조를 쫓는 스패츠 일당의 허당스러운 면모와 탭댄스를 통한 일사불란한 퍼포먼스는 위협적인 갱단의 이미지를 희화화하며 극의 오락성을 높인다. 무거운 코트를 입은 채 리드미컬하게 무대 바닥을 구르는 탭댄스 시퀀스는 추격전의 긴장감을 유쾌한 리듬으로 치환하며, 쇼뮤지컬로서의 형식을 갖추려는 장치로 활용된다.


ⓒPR컴퍼니

그러나 이러한 코미디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쇼뮤지컬’이라는 장르적 기대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은 화려한 군무나 시각적 압도감보다는 인물 간의 대사와 관계 설정에 더 큰 비중을 둔다. 특히 여주인공 슈가와 여장한 조 사이의 감정선이 부각되면서 극은 코미디 소동극보다는 정적인 멜로드라마의 흐름을 띤다. 이로 인해 극 전반의 템포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쇼뮤지컬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서사의 밀도가 다소 낮게 체감될 수 있다.


결국 ‘슈가’는 원작 영화의 향수를 간직한 관객이나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에 집중하는 관객에게는 소구력이 있을 수 있으나, 현대적인 쇼뮤지컬의 화려함과 세련미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그 간극이 뚜렷하게 체감되는 무대로 다가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전적 가치의 보존과 현대적 재해석 사이에서의 균형 문제는 여전히 이 작품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는다.


접근성을 높인 건, 대중적 인지도 높은 배우를 통해서다. 슈가 역엔 솔라(마마무)·양서윤·유연정(우주소녀), 조(죠세핀) 역엔 엄기준·이홍기(FT아일랜드)·남우현(인피니트)·레오(빅스), 제리(다프네) 역엔 김법래·김형묵·송원근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2월 22일까지 한전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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