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극장으로㉝] 서울 서초구 씨어터송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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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려지는 이미지는 법원과 검찰청, 그리고 변호사와 법무사 사무실 등의 간판이 빼곡하게 들어선 풍경이다. 사실상 문화보다는 행정과 사법의 중심지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곳에는 전혀 다른 공기를 품은 공간이 13년째 숨 쉬고 있다. 바로 소극장 ‘씨어터송’이다.
올해로 연기 인생 30년을 바라보는 배우 송인성 대표는 “작업자들이 늘 똑같은 마음으로, 원하는 작품을 마음껏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이 공간은, 삭막한 서초동 한복판에서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송 대표는 지난 13년의 시간을 ‘애증’이라 표현하면서도, 그 공간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성장의 의미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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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 그리고 갈증이 낳은 무모하고 용감한 도전
씨어터송의 시작은 송 대표 개인의 삶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일찍 결혼해 5년간 해외 생활을 했던 그녀는 두 아들을 키우며 배우로서 일종의 ‘갭이어’(Gap year)를 가졌다. 귀국 후 다시 창작 활동을 하려 했지만, 육아와 병행하며 한정된 시간 안에 작업을 이어가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창작자의 마음에서 분출이 안 되는 거였죠.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시간에 뭔가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어요.”
그 갈증은 그녀를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만들었다. 송 대표는 동료들과 함께 못 하나 박는 것부터 조명, 무대 구성까지 하나하나 직접 구상하며 공간을 채워나갔다. 처음 세팅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뜯어고치고 공부하기를 반복하며, 지난 13년간 작업자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빚어냈다.
무엇보다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가 아닌, 서초동에 극장을 연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여기에는 “극장들이 대학로 밖으로 나와 더 넓게 뻗어나가야 한다”는 송 대표의 확고한 신념이 깔려 있었다. 비록 현실의 벽은 높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어 가장 익숙한 이 거리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뚝심 있게 버텼다. 씨어터송은 그렇게 서초동이라는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송 대표의 예술적 고집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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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배우에 의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공간
배우가 직접 설계했기에 씨어터송은 철저히 ‘작업자 친화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블랙박스’ 형태라는 것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이 공간에서 연출가는 원하는 각도와 방향으로 무대를 구성할 수 있고, 객석 또한 최대 100석 규모 안에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송 대표가 가장 신경 쓴 또 하나의 공간은 바로 분장실이다. 그는 “소극장 분장실이 무대 뒤 통로에 있거나 화장실 옆에 대충 마련된 경우가 너무 싫었다”며 “작업자들이 대우받는 느낌을 주고 싶어 공간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쾌적한 분장실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청결과 공기 상태에 유난히 집착하는 것 또한 배우들이 공연 전후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자신을 ‘사감 선생님’이라 칭하는 송 대표는 극장 관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고된 일인지 토로했다. “관객이나 배우가 다치면 안 되고, 극장에 데미지가 가도 안 된다”는 책임감 때문에 초기에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블랙박스 극장의 특성상 무리한 요구를 하는 대관 팀과는 타협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지금은 송 대표를 포함해 4명의 인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극장을 운영한다. 기술 전반을 담당하는 김상욱, 조명과 콘솔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김채린, 그리고 기획적인 마인드로 송 대표의 의논 상대가 되어주는 김진솔까지. 코로나19로 극단이 와해되는 위기 속에서도 남은 이 동료들이 있었기에 10주년을 넘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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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어터송은 나에게 학교였다”
지난 13년은 송 대표에게 단순한 운영 기간이 아니었다. 그는 씨어터송을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학교”라고 정의했다.
“배우는 보통 자기 역할과 캐릭터라는 좁은 시야만 갖기 쉬워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제작, 관리,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사람 관리부터 연기적인 실험까지, 자의든 타의든 인간 송인성이 확장되는 시간이었죠.”
성인으로 자라난 두 아들처럼, 이제 극장도 그녀의 품을 떠나 더 넓은 의미를 향해 가고 있다. 과거에는 본인의 창작 욕구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후배들의 성장을 돕는 ‘서포터’로서의 역할에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씨어터송에서 낭독 공연으로 시작해 작품을 발전시키고, 결국 대학로 무대로 진출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는 이곳에서 발전시킨 극단 ‘없는사’의 ‘배경음악(Background Music)이 대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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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배우의 꿈, 그리고 열린 문
후배들을 위한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지만, 송인성 대표는 여전히 현역 배우다. 최근에도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간과 강‘ ’헤다 가블러‘ 등에 출연했고, 현재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엄마·간호사·오렌지주스 역 등으로 출연 중이다.
배우로서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소극장의 운영에 대한 철학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송 대표는 현재 출연 중인 ’라이프 오브 파이‘의 경우, 이 작품이 보여주는 ’장르적 다양성‘이 씨어터송에서도 피어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티켓을 열면 연극 아니면 뮤지컬, 딱 두 종류로만 나뉘잖아요. 하지만 공연에는 훨씬 다양한 장르가 있거든요.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이름 아래 장르가 확장되는 걸 지향하고 있어요. 씨어터송은 비록 작은 극장이지만, 이곳에서도 틀에 박히지 않은 다양한 실험들이 있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무대 위에서 만난 훌륭한 배우들의 움직임과 찰나의 호흡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얻으면서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도 말했다. 씨어터송을 거쳐 가는 이들이 이곳을 ‘환영받는 따뜻한 곳’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도 전했다.
“엄격하지만 따뜻한 사감 선생님이 있는 곳, 그래서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후배들이 겁먹지 말고 편하게 문을 두드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공간만 있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의지와 용기가 있다면 저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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