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의 최후 [정명섭의 실록 읽기㉙]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1.27 14:01  수정 2026.01.27 14:01

그녀의 신분은 더없이 미천했다. 아버지는 현령을 역임한 사대부였지만 어머니는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이 아니라 첩이었다. 그것도 양인 출신의 첩이 아니라 여자 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노비 신분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운명은 인간의 운명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한다. 실록에 보면 그녀가 어떻게 자신이 엮인 운명의 굴레를 벗겨냈는지 잘 나와 있다.


연산군이 사냥터로 만들어 버린 성균관의 그림 (직접 촬영)


장녹수는 제안 대군의 가비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 가노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연산군일기 8년 11월 25일자 기사로 서기 1502년의 일이다. 여자 종의 딸로 태어나 남자 종의 아내가 되었으니, 그녀와 그녀가 낳을 자식의 운명 역시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연산군이 그녀에게 홀딱 빠지게 되었다. 노래를 잘했고, 동안이었던 점이 어필을 한 것 같다. 거기다 둘이 만날 당시 연산군은 26살 정도였는데 장녹수는 30여 세였으니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궁궐에는 그가 전국에 보낸 채홍사들이 끌고 온 어리고 예쁜 여성들이 잔뜩 있었다. 하지만 연산군은 그녀에게 푹 빠져서 노비와 전답, 가옥들을 선물로 주었고, 후궁으로 받아들이면서 숙원으로 삼았다. 그래서 장녹수는 ‘숙원 장씨’라고 불린다. 천한 여종이었다가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의 신분이 된 것이다. 장녹수는 특이한 방식으로 연산군을 대했는데 어린아이처럼 조롱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아랫것들을 다루는 것처럼 심한 욕을 한 것이다. 이것 역시 실록에 남아있으니 최소한 여러 목격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연산군의 원래 모습과는 상당수 다른 지점이다. 연구자들은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존재를 오랫동안 알지 못하면서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어쨌든 노비의 자식을 태어나 눈칫밥을 먹고 지내던 장녹수는 연산군이 원하는 것과 갈망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연산군은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춰준 장녹수에게 후궁의 자리는 물론이고, 막대한 재물을 하사하면서 총애했다. 다른 때라면 대간들이 나서서 사치를 부리면 안 된다고 하거나 미천한 여인을 가까이 두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산군이 벌인 무시무시한 숙청으로 인해 조정 관리들의 대부분은 허수아비 같은 신세가 되었다. 연산군은 성균관을 폐지하고 사냥터로 만들어버리고, 경기도 지역의 상당수를 자신의 사냥을 위한 출입 금지구역으로 만들어서 살고 있던 백성들을 쫓아내서 제사도 지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밖에 신하들을 다양하게 괴롭혔는데 입조심을 하라는 뜻의 신언패를 관복에 차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과 기생들의 가마를 매게 했다. 사극에서 나오는 가마꾼들 역할을 과거에 합격해서 관직에 오른 관리들에게 시킨 것이다. 거기다 반정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신하들이 쓰는 사모의 앞뒤에 충(忠)과 성(成)을 수놓게 하였다. 한 마디로 신하들을 개차반 취급을 했고, 오직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만 살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녹수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언니를 면천시키는 것은 물론 일가친척들에게 막대한 재물을 안기게 해줬다. 그리고 자신의 출신 때문인지 노비를 괴롭히는 관리나 사대부들을 처벌하거나 감옥에 보내곤 했다. 이런 그녀의 행동들은 당연히 관리들과 사대부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연산군은 말을 안 듣는 신하들을 죽이거나 쫓아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왕국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후원에서 잔치하며 스스로 초금(草笒) 두어 곡조를 불고, 탄식하기를,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

하며, 읊기를 마치자 두어 줄 눈물을 흘렸는데, 여러 계집들은 몰래 서로 비웃었고 유독 전비와 장녹수 두 계집은 슬피 흐느끼며 눈물을 머금으니, 왕이 그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

하며, 각각 물건을 하사하였다.


연산군 일기 12년 8월 23일자 기록이다. 그리고 열흘 후인 9월 2일에 중종 반정이 일어난다. 연산군의 예측대로 장녹수는 새로 즉위한 중종의 명령에 의해 목이 베이고 말았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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