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만 공짜" 역차별 계속되나…美 으름장에 韓 망사용료 '표류' 전망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6.01.28 11:02  수정 2026.01.28 13:54

美 서한·관세 전방위 공세…망사용료 입법 추진 제동

EU는 '개입 제도화'…한국은 통상 압박으로 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미국이 디지털 이슈와 관련해 '자국 기업을 차별하지 말라'는 서한을 한국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망사용료 등 주요 디지털 규제 입법이 동력을 잃고 사실상 '장기 표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대응 방안을 논의중이다.


28일 관가에 따르면 제임스 헬러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지난 13일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제1수신자로 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전날 설명자료에서 "서한은 디지털 이슈 관련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명하며 이번 서한이 관세 이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디지털 규제 장벽은 국내에서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법, 망 사용료 규제, 정밀 지도 등이 꼽힌다.


이번 서한에서 미국 측은 망 사용료를 뜻하는 '네트워크 사용료(network usage fees)'와 지도 등의 표현을 직접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 사용료 문제는 갑자기 제기된 이슈가 아니라 2022년부터 5년째 무역대표부(USTR)가 제기해온 사안이다.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와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자(CP)간 줄다리기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USTR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미 전략적 무역·투자 합의' 팩트시트에서도 미국과 한국은 망 이용대가(network usage fees) 및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을 받지 않고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이 한미간 무역 합의 이행을 압박하며 자동차, 의약품 등의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시점에 디지털 이슈를 문제 삼으면서 국내 법안 추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ISP 3사(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는 유튜브·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 급성장으로 망 트래픽이 급증하자 운영 주체인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도 망 이용대가를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하루 평균 트래픽 비중은 구글 30.55%, 넷플릭스 6.94%, 메타 5.06%로 이들 3사의 비중이 절반(42.55%)에 달한다. 이들 CP는 막대한 트래픽을 만들어내는 주체인만큼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ISP측 입장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인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 로고 사진. ⓒAP/뉴시스

특히 구글이 미국 AT&T, 프랑스 오렌지(Orange) 등 해외 통신사업자에게는 망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는 만큼 형평성 차원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재인상 기조와 자국 우선주의 강화를 우려하면서도 늘어나는 국내 기업 부담이 완화돼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망 사용료 부과는 해외 특정 업체가 아니라 국내외 CP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반경쟁적 행위나 역차별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구글만 망사용료를 내지 않아 타기업들과 역차별이 발생한다"면서 "현재 발의돼있는 관련 입법을 통해 망사용료 논쟁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안이 국제 외교·통상 이슈로 확산된데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큰 자동차·제약·바이오 산업이 맞물리면서 디지털 관련 규제는 사실상 동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망 이용대가는 해외 기업-각 통신사 간 협상으로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나 협상력이 빅테크에 기울어져 있으니 제도나 규제를 통해 바로잡겠다고 하는 것이 한국, EU 등의 기조"라며 "그러나 미 정부가 빅테크 부담을 이유로 무역·통상 이슈로 프레임을 전환시켰다"고 설명했다.


EU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디지털 네트워크법(Digital Networks Act·DNA)'을 추진중이다.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ISP와 CP간 분쟁 조정 절차를 법에 명문화한 것이 특징으로 상호 분쟁 발생 시 조정회의를 소집해 제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디지털 제공 서비스 수출입 동향(2022-2023)ⓒ코트라

우리나라 21대·22대 국회에서도 망 이용대가 관련 법안은 다수 발의됐다. 망 이용 계약을 체결할 때,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을 부과하거나, 계약 체결을 부당하게 지연·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촉진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법안이 발의에만 그치고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데에는 한·미 규제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와, 타 산업 이슈에 밀린 우선순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 보다 국내 법안이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는 데는 디지털 규제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돼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4억5000만명의 거대 시장인 EU와 비교해 작은 한국은 상대적으로 압박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수출 주도의 한국 시장을 고려할 때 디지털 규제 강행 시 미국이 '통상법 301조(슈퍼 301조)'를 발동, 반도체·자동차 등 한국 주력 수출품에 보복 관세를 매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이유를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미국이 강경 시그널을 보낸 상황에서 망사용료 추진만큼은 속도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업계 안팎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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