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계 청중비용이론
다카이치의 역사적 대승
일본 총선과 청중 비용 이론
한국 6월 지방선거
집권 자민당(LDP) 당수 사나에 타카이치 아판 총리가 지난 8일 일본 도쿄 총선 당일 자민당 본부에서 당선자 이름에 빨간 종이를 붙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 관계 청중비용이론
청중비용이론(Audience Costs Theory)라는 게 있다. 민주국가의 정치지도자가 대외적으로 강경한 위협이나 공언을 한 뒤 이를 실현하지 않으면 국내 청중(유권자)에게 무거운 정치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어론(James Fearon) 교수가 1994년 제안한 국제 관계 이론으로, 군사적 위기에서 국가가 ‘청중(국내 정치적 제재·비난)’을 고려해 약속을 지키려는 경향을 설명한다. 민주평화론과 함께 국제 관계의 경험적 법칙으로 인용되지만, 아직은 방법론적·데이터적 논쟁이 지속되는 이론이다. 군사 위기 결과를 설명·예측하는 데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이후 동맹 형성, 무역, 제재의 신뢰성, 테러 전략 등으로 적용 범위가 확장됐다.
피어론의 이론을 얼마 전 실시된 미국 텍사스주 보궐선거에 적용해 보자. 텍사스는, 14개월 전 대선에서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전통적인 보수당 강세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트럼프가 이끄는 보수당 후보에게 참패를 안겼다. 트럼프는 그동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핵, 그린란드 편입 등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피어론의 청중비용이론으로 해석하면, 텍사스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대외적 발언은 단순한 허풍(Bluffing)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보수당에 참패를 안겼다.
TACO, ‘트럼프는 결국 꼬리 내려’에 대해 무거운 정치적 비용을 물리면서, “하려면 제대로 한 방 때려” 하고 강하게 요구한 형국이다. 연말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그동안의 강경한 대외 발언을 현실화해야 할 강력한 국내적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이 허풍쟁이가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라 체포만으로는 국내 청중(유권자)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남은 곳은 이란이다. 청중비용이론에 따르면 “트럼프는 또 다른 청중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란을 공격할 것이며, 그 공격은 임박했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카이치의 역사적 대승
일본 총선에서는 다카이치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이 전체 465석 가운데 단독 316석으로 역사적인 대승을 기록했다. 지역구 249석, 비례대표 67석이다. 선거 전 과반 미달인 198석에서 단숨에 120석 늘렸다. 다카이치의 보수화에 반대해 급조된 중도개혁은 172석에서 49석(지역구 7석)으로 123석 폭락했다. 필자의 기억으로 G-7 국가에서 이런 일방적 대승은 1997년 5월 영국 노동당이 거둔, 창당 이래 최대의 승리 이래 30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은 659석 가운데 418석을 차지했고, 집권 보수당은 165석으로 18년 정권을 빼앗겼고, 자유민주당 46석을 합해도 노동당 의석 절반 수준이었다.
일본 국내 언론은 다카이치의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통한 경제 성장 실현과 국민 생활 향상 구호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았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원래 논쟁은 압승이 아니라 과반 의석 여부였다. 투표일 열흘 전인 1월 27·28일 요미우리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처음으로 자민당 ‘단독 과반 가능하다’라고 점쳤다. 사나흘 뒤인 2월 2일 아사히신문은 자민당 예상 의석이 292석 전후(278∼306석)라고 보도했고, 5일 마이니치신문은 연립여당이 310석을 노린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8일 NHK 방송은 출구조사 결과 274~328석을 전망했다. 시계열로 살펴보면 자민당의 예상 의석수가 선거 막판 점점 더 큰 폭으로 늘어났다. 국내 정책 이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짧은 선거 기간 지지율에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권자들이 자민당으로 결정한 다른 요인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 총선과 청중 비용 이론
피어론의 청중비용이론에 따르면, 대만 유사 사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전례 없이 강력한 적극적 지지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처음 대만 유사시 일본 개입 발언을 할 때만 해도 일본 국내외에서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중국 정부는 고압적인 협박으로 일관했다. 과거 일본 지도자들은 중국이 강경하게 나오면 수그러드는 경향이 있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그러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고, 일관되게 친미 반중(親美 反中) 입장을 고수했다. 당당하고 일관된 자세가 청중(일본 유권자)의 신뢰를 얻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선거전 막판인 5일 세계적인 대만 반도체기업 TSMC 웨이저자 회장이 도쿄 총리 관저를 방문해 3나노 반도체 양산 계획을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달한 것도 강력한 원군이 되었다. 일본 구마모토 공장에서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고 투자도 50억 달러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대만 유사시 발언이 종일 갈등의 이유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대만 반도체기업이 일본에 공장을 확장하는 것이다. TSMC 회장의 방문은 다카이치의 입지를 크게 강화했고, 일본 유권자들은 다카이치가 허풍만 치는 존재가 아니라고 인정했다. 선거일 전에는 트럼프가 강력한 지지 선언을 보냈다. 따라서 다카이치의 신춘대첩은 국내 정책만의 승리가 아니라, 일관된 대외 정책의 승리며, 청중이 큰 보상을 안긴 것이라고 새로 규정해야 한다.
한국 6월 지방선거
한국은 아직은 국내 정치 이슈가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 정치권이 외교·안보에 문외한이라 그렇기도 하고, 국민이 외교의 중요성을 잘 몰라서도 그렇다. 무엇보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국면이 70년 이상 지속되면서 국민 대다수가 국제 관계에 둔감해진 탓이다.
올해는 다를 것이다. 1945년 미군이 일본을 항복시킨 이래 8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이 한국에 대해 어려운 숙제를 내고 있다. 1회성 숙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큰 후과가 있는 중대한 사안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관세 인상, 대미 투자, 비관세 장벽 철폐, 안보 협력 등등 한국 정부나 집권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만의 지혜와 경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대통령이나 민주당 내에는 외교의 경험 있는 인사가 거의 없다. 당정의 주요 인사 대부분이 깜짝 쇼와 정쟁에는 전문가지만, 경제와 금융도 잘 모른다.
그렇게 나라가 누란의 위기인데도 정부 여당은 합당 논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진다. ‘2중대’를 사단 본부로 끌어들인다고 사단 전력이 강화되나? ‘2중대’는 차라리 외곽 정찰과 수색을 맡기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대통령에게 불리한 법정 진술을 이끌어낸 변호사를 특검 후보로 추천하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하기야 나라 망치는 협상하고도 아무도 잘못이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제 정신 차려야 한다. 아마 선거가 끝나면 언론과 평론가들은 국내 이슈가 선거전 판세를 갈랐다고 주장할 것이다.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중(국내 유권자)은 대미 협상 실패에 대해 비용을 물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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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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