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스노트’를 처음 접한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왜 10년 넘게 반복해 무대에 오르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수차례 시즌을 거치며 다양한 해석을 낳아온 작품이지만 임규형(라이토 역)과 산들(엘 역) 페어는 또 다른 결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임규형(왼쪽)과 산들. ⓒ오디컴퍼니
1막이 끝난 뒤 객석에서는 임규형과 산들의 실력에 감탄하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단순한 팬심을 넘어, 라이토와 엘이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완성한 배우에 대한 감탄에 가까웠다.
임규형의 라이토는 초반부터 반듯하고 순수한 인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그의 선택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이 더 또렷하게 대비된다. 격렬한 광기보다는 차분하게 단단해지는 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집요함이 인상적이다. 라이토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해가는 흐름을 과장 없이 쌓아 올린다.
산들의 엘은 자칫 과장되거나 어색해질 수 있는 특유의 말투와 제스처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엘의 기이함을 그대로 흉내 내기보다 지성과 직관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재해석한다. 넘버에서 보여주는 안정적인 가창은 라이토와의 대립 구도를 더욱 팽팽하게 만든다. 두 배우의 음색이 맞붙는 순간, 긴장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합이 돋보인다. 임규형과 산들은 모두 비교적 부드러운 인상을 지녔는데, 그 외형적 이미지가 오히려 두 천재의 대립을 더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선과 악의 극단적 대비보다는, 닮은 듯 다른 두 인물이 서로를 밀어붙이는 구조가 부각된다.
미사 역의 케이는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힘 있게 밀어붙여야 할 장면과,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살려야 할 순간을 구분해 표현한다. 캐릭터의 과장된 면모를 현실감 있게 조율하며 무대의 리듬을 살린다.
양승리의 류크는 여전히 작품의 무게를 조율하는 존재다.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때로는 장난스러운 태도로 긴장을 풀어준다. 관객은 그를 통해 이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선과 악, 정의와 심판을 둘러싼 치열한 대립이 결국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임규형–산들 페어는 광기를 폭발시키기보다 서서히 스며들게 하고, 기이함을 강조하기보다 인물의 설득력을 쌓는다. 10주년을 맞은 ‘데스노트’가 여전히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이유는, 익숙한 서사 속에서도 이렇게 다른 결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데스노트’는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5월 10일까지 공연된다. 임규형-산들 페어는 3월 14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