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ESG 공시 시작…핵심인 스코프3는 2031년 도입
30조원 이상 58개사만 1단계 적용…범위도 제한적
국정과제 ‘신속 추진’과 온도차…“임기 밖 설계” 지적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20층 챔버 라운지에서 개최한 생산적금융 대전환 네 번째 회의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가 지난 25일 발표한 ESG 공시 기준 최종안은 ‘단계적 추진’을 내세웠지만, 핵심인 스코프3(가치사슬 전반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는 2031년으로 미뤘다.
일정상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시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사실상 도입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시는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58개사를 대상으로 시작한다. 이후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예시로 제시됐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의 핵심 지표인 스코프3는 “산정·추정 인프라 구축 필요”를 이유로 도입을 3년 유예해 이번 임기 이후인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기업의 데이터 수집 부담과 공급망 추적 한계 등을 고려해 단계적 도입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국제적 정합성을 고려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토대로 설계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유예가 아니라 사실상 도입 회피 신호”
시장에서는 이번 3년 유예를 두고 “준비 기간”이 아니라 “정책 책임의 이월”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ISSB가 2023년 기후 공시 기준을 확정한 이후 국내에서도 도입 논의가 이어져 왔지만, 핵심인 스코프3를 2031년으로 설정하면서 정책 실행 시점은 임기 밖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한 지속가능성 연구기관 관계자는 “스코프3는 기업 배출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핵심 지표”라며 “3년 유예는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는 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고 말했다.
투자자 그룹과 ESG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된다.
그간 자산운용사와 책임투자 네트워크는 법정 공시화를 요구해왔으며, 기준 통일을 통해 투자 판단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말은 국제 정합성인데 실제로는 기업 부담을 이유로 핵심을 뒤로 미뤘다”며 “유예가 반복되면 기업들도 준비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ESG 공시 일정이 수차례 조정되면서 일부 대기업에서는 관련 조직이 축소되는 흐름도 나타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EU 맞춤형 설계…국내 정책 의지는 후퇴?
업계에서는 이번 일정이 EU 규제 대응에 맞춘 ‘최소한의 정렬’에 가깝다는 해석도 나온다.
EU는 지속가능성 공시 체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역외 기업에 대한 공시 적용 시점은 2029년으로 예정돼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은 EU 규제 대응을 위해 일정 수준의 정보 공개가 불가피하다.
다만 일부 국가는 스코프3에 대해 1년 내외의 유예를 두는 방식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3년 유예는 상대적으로 긴 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1단계 의무 대상이 자산 30조원 이상 58개사(전체 상장사의 약 6.9%)에 그치면서,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자율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기업은 이미 200곳을 넘는다.
회계기준원 등 일부에서는 더 넓은 범위를 상정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종안은 기업 부담 완화 쪽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과제 ‘신속 추진’과의 간극
이번 방안은 현 정부 국정과제와의 정합성 논란도 낳고 있다. 해당 과제는 “ESG 공시·평가 인프라를 제고하고 ESG 공시를 신속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일정이 ‘신속 추진’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SG업계 관계자는 “공시는 단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시장 신호”라며 “지금과 같은 일정은 정부가 이번 임기 내 실행 의지가 없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 공시 논의는 5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언제 시행하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속 추진’을 내세운 국정과제와 달리 핵심은 5년 뒤로 미뤄졌다.
해당 관계자는 “3년 유예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라며 “실행 의지가 있었다면 일정은 달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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