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크루 퍼포먼스와 노련한 클로즈업 장면으로 비주얼 극대화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아이브는 지난달 23일 두번째 정규 앨범 '리바이브 플러스'(REVIV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블랙홀'(BLACKHOLE)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소멸과 탄생이 공존하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영상은 무(無)에 가까운 공간 속에서 끝이 곧 시작이 되는 순환의 서사를 만든다.
ⓒ스타쉽
줄거리
영상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마천루, 롯데월드타워 123층에 설치된 스카이브릿지에서 시작된다. 리즈가 카메라를 향해 총을 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도심 한복판 차 위에서 대기하던 장원영이 신호를 받은 듯 당당한 포즈로 화답하며 거대한 서사의 막이 오른다.
이후 멤버들은 리무진, 도심 한복판, 콘서트장, 무대 등 화려한 공간과 오브제로 가득 찬 곳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특히 광활한 공연장 세트에서 펼쳐지는 메가크루 퍼포먼스에서 멤버들은 수십 명의 댄서와 합을 맞추고 2절 리즈 파트에서 긴 책상을 도구로 활용한 절도 있는 군무를 선보인다. 멤버 개개인의 클로즈업 샷과 대형 군무가 교차 편집되며 마치 블랙홀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생명이 탄생하는 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해석
이번 뮤직비디오는 아이브가 정규 2집을 통해 선언한 관계의 확장풀어낸 시각적 결과물이다. 롯데타워의 수직적 높이와 지면의 수평적 공간이 교차하는 연출은, 그간 '나'라는 견고한 성벽 안에 머물던 아이브가 세상(우리)과 조우하기 위해 스스로 경계를 허무는 과정을 의미한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소멸의 공간이지만, 아이브는 그 안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돼 주변의 모든 시선과 감정을 끌어당긴다.
영상 후반부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공간 속 불꽃이 휘몰아치는 배경에서 빠져나오려는 멤버들, 그리고 고음 파트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노래 부르는 유진, 맨 처음 리즈가 서 있던 스카이브릿지에 모두 서 있는 멤버들은 결국 '우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라는 재탄생의 메시지를 공고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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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과거 아이브가 '러브 다이브'(LOVE DIVE)나 '아이엠'(I AM)을 통해 화려한 자기 확신과 '나'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면, 이번 '블랙홀'은 그 확신이 타인에게 전이돼 거대한 에너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응축된 밀도로 그려냈다. 전체적인 영상미는 SF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웅장함을 갖추면서도, 멤버들의 개성 있는 마스크와 세밀한 표정 연기를 놓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의 사운드와 이미지는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는 아이브가 더 이상 특정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들이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를 무한히 넓히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뮤직비디오는 아이브가 스스로 중력이 돼 대중과 연결되기를 선택한,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다.
한줄평
'나'라는 우주를 깨고, '우리'라는 블랙홀로 모두를 집어삼킨 아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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