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주변 없어도 한 마디 안에 진심이 담길 수 있어…
원빈도, 나도 평범해. 그냥 이런 사람이라고 봐 달라”
배우 이나영이 ‘아너’를 통해 ‘첫’ 장르물에 도전했다.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 이후 3년 만의 복귀작으로,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느꼈다. 그러나 좋은 작품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 좋았다는 이나영은 느리지만, 소신 있는 발걸음으로 바운더리를 넓혀가고 있다.
ENA 드라마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하 ‘아너’)은 거대한 스캔들이 되어 돌아온 과거에 정면 돌파로 맞서는 세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이나영은 이 작품에서 성범죄 피해자 변호 전문 로펌 L&J(Listen&Join)의 대외적 메신저 윤라영 변호사를 연기했다.
ⓒ이든나인
L&J에 필요한 걸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리더 강신재(정은채 분), 불같은 성정과 저항정신을 지닌 행동파 송무 담당 변호사 황현진(이청아 분)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에 맞서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었다. 이 작품으로 첫 장르물에 도전한 이나영은 ‘아너’의 무겁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오롯이 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는 대사를 외우는데 먼저 방점을 찍는다. 그다음 감정씬을 살피는데, 이번엔 감정씬이 없어서 만만하게 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극 전체가 감정씬이더라. ‘왜 이렇게 슬프지’라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 가면 외향적인 사람이 된다. 현장도, 스태프와의 소통도 좋아해서 혼자 신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문득문득 ‘왜 이렇게 슬프지’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이 같은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전문직 역할도 처음이었다. L&J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윤라영은에게 법정씬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대중들 앞에서 메시지를 전하거나 사건을 직접 취재하며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등 다채로운 활약으로 긴장감을 조성했다. 윤라영의 아픔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화려한’ 셀럽 변호사의 면모도 마음껏 드러내며 후반부 반전을 부각하기도 했다.
윤라영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외양에도 신경을 쓰며 첫 장르물 도전을 안정적으로 소화한 이나영이다.
“전문여성이라 작품에서 재킷도 거의 처음으로 입어봤다. 몇 벌을 입어봤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입었다. 촬영이 여름에 시작돼 겨울에 끝이 나서 나중을 위해 킵을 해둬야 하는 의상도 많았다. 피팅 사진을 정리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초반에 색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 일차원적인 장면이 없다 보니까 옷도 한 번에 정해진 옷이 없었다. 두고두고 입어보면서 감정에, 이 씬에 맞는지를 거듭 고민했다. 스타일리스트가 너무 고생했다. 스타일 보는 재미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신경을 썼다.”
윤라영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만큼이나 신경을 쓴 부분이 정은채, 이청아와의 ‘케미’였다.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동료이자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친구 사이인 만큼, ‘끈끈함’이 탑재돼 있어야 했다. 세 배우 모두 내향적이라 다소 어색한 첫 만남을 가지기도 했으나, 성향이 비슷해 편안하게 케미를 쌓아나갈 수 있었다.
세 친구가 야식을 먹으며 수다 떠는 일상적인 장면에서는 이나영의 의견으로 ‘샐러드’ 대신 ‘떡볶이’로 메뉴를 변경하는 등 적극적이지만 과하지 않게 삼인방의 관계를 구축, 3인방의 활약을 그리는 ‘아너’만의 재미를 배가했다.
ⓒ이든나인
“튀는 사람 없이 성격이 다 비슷해서 좋았다. 멋진 여성처럼 화면엔 나왔지만, 다 허당 이었다. 감독님의 의도이기도 했지만, 20년 지기 친구는 멜로와도 크게 다르지 않더라. 정말 사랑해야 했다. 애써 보이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뒀다. ‘~하는 척’하는 걸 빼는 것이 연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안한 게 3명이 모였을 때 자기 집처럼 풀어질 수 있도록, 연극적인 리허설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도 다양하게 나오고, 현장에서 부딪힘도 많아졌다. 만났을 땐 사실 각자 캐릭터에 이미 들어간 후였기에, 내적 친밀감이 형성돼 있었다. 만나면 어디가 아팠다, 춥다, 뭘 먹었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듯 ‘아너’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었다. 로코물로 설렘을 선사하는가 하면, 영화 ‘뷰티풀 데이즈’를 통해선 독립영화의 재미를 선사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는 이나영에게도 ‘아너’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색다른 행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만큼 ‘다음’ 행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드라마적으론 장르적인 걸 해봤으니, 또 다른 가지치기를 한 것 같아 좋다. 내게 다른 바운더리도 생긴 것 같다. 내가 경험하면서 나도 생소했거나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선 ‘이런 것도 표현하니까 해볼 만 하다’는 것도 느꼈다. 이를 좀 꼬아서 다른 걸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잦은 ‘공백기’를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지만, 이나영은 ‘공백기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좋은’ 작품을 만날 타이밍을 늘 기다리고 있다는 이나영은 ‘열린’ 마음으로 선택지들을 살피고 있다.
“작품에 대해 계산은 없다. 휴식기도 예상이 안 된다. 이러다가 바로 할 수도 있다. 특정 장르에 꽂히는 것도 없다. 공포만 잘 못 본다. 시나리오가 들어와도 대낮에 무서운 부분은 스킵하며 보곤 했다. 공포 말고는 다 좋아한다. 영화 보는 게 저의 유일한 낙이다. 좋은 작품을 보면 늘 ‘나도 저 안에 들어가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에는 독립영화도 챙겨보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간다. ‘계산’은 없지만, ‘다양성’에는 기여하고 싶다는 이나영만의 소신도 있었다. 잦은 공백기 탓에 ‘신비주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나영은 활발한 활동보다 진심 어린 행보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길 원했다.
“어떤 단어로 나를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성’을 늘 염두에 둔다. 말주변이 좀 없더라도 한 마디 안에 진심이 담길 수 있다고 본다. 원빈도, 저도 신비주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됐지만, 사실 너무 평범하다. 평소엔 맨날 트레이닝복 입고 다닌다. ‘우리가 뭐 내비칠 게 있을까’ 이런 성격이라 더 그렇게 보시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작가들도 보면,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하는 분이 있지만 인터뷰도 전혀 안 하는 분이 있지 않나. 우리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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