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 영화사업부 출신 제작자
온다웍스 설립 후 ‘왕과 사는 남자’로 천만 기록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여러 기록을 동시에 새로 썼다. 이 작품은 2024년 ‘범죄도시4’ 이후 약 22개월 만에 탄생한 1000만 영화로, 역대 국내 개봉작 가운데 34번째이자 한국영화로는 25번째로 ‘천만’ 고지를 밟았다. 코로나 이후 기준으로는 여섯 번째 1000만 영화이며,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외한 단일 작품으로 보면 ‘서울의 봄’과 ‘파묘’에 이어 세 번째다.
ⓒ쇼박스
사극 장르로 범위를 좁히면 ‘왕의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이후 네 번째 기록이다. 극장가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장르와 시장의 여러 ‘벽’을 동시에 넘어선 이 영화의 중심에는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가 있다. 지난 2월 4일 개봉해 한 달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 '왕과 사는 남자'의 열기를 가라앉지 않고 있다. 15일 기준 1298만 9649명이 관람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왕과 사는 남자’가 1500만 관객 고지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800만, 900만 넘어갈 때까지만 해도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거든요. 그런데 지난 주말 쯤부터는 같이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떠오르더라고요. 이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일했던 스태프들이요. 그래서 요즘은 그분들 얼굴이 계속 생각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임은정 대표는 CJ ENM 영화사업부에서 투자와 기획을 두루 경험한 제작자다. 2011년 CJ ENM에 입사해 약 12년간 투자팀과 기획제작팀을 거치며 ‘국제시장’(2014), ‘베테랑’(2015), ‘엑시트’(2019) 등의 투자 진행에 참여했고, ‘불한당’(2017), ‘임금님의 사건수첩’(2017) 기획에도 관여했다. 이후 ‘연애 빠진 로맨스’(2021)에서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 경험을 쌓았다. 2023년 제작사 온다웍스를 설립한 그는 첫 작품으로 ‘왕과 사는 남자’를 선보였다.
“이전 회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이 작품은 CJ ENM에 있을 때 처음 기획됐습니다. 당시 투자팀에서 일하다가 ‘자체 작품을 한번 해보라’는 기회를 받아 기획제작팀에서 개발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세 개였는데 ‘연애 빠진 로맨스’, 공포물, 그리고 이 작품이었습니다. 공포물은 결국 만들지 못했죠. 그때 저는 전형적인 사극 문법에 조금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어요. 궁궐 안에서 권력 암투를 벌이는 이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 아래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시대극에서는 그런 시선이 종종 있었지만, 사극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다고 느꼈거든요.”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흥행을 장담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임 대표는 개봉 후 첫 주말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확신은 없었어요. 언론 시사랑 일반 시사 반응은 좋았는데 예매량이 생각만큼 빨리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개봉 첫날 스코어를 보고 ‘이게 우리가 생각한 흐름이 맞나’ 하면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첫 주말에 100만을 돌파했을 때 마치 천만 영화가 나온 것처럼 기뻐했어요. 우리끼리 ‘누가 보면 진짜 성공한 줄 알겠다’고 농담도 했죠. 그런데 이후로 매주 목표 숫자를 계속 넘어서는 성적이 나오더라고요. 지금은 사실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는 게 무의미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임 대표는 장항준 감독이 가진 각본가로서의 역량과 정서적인 울림을 믿고, 침체된 시장 분위기 속에서도 연출을 제안했다. 모두가 극장의 위기를 말하며 몸을 사릴 때, 그는 제작자로서의 강한 확신과 배급사 출신다운 분석력을 바탕으로 장 감독을 향한 설득에 나섰다.
“감독님께 ‘극장이 어렵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결국 극장에는 몇 편의 영화가 계속 걸릴 수밖에 있고, 지금처럼 모두가 도전을 주저하는 시기라면 오히려 먼저 움직이는 쪽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제정신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일리는 있다’는 반응을 보이셨고 결국 함께 하게 됐습니다.”
ⓒ쇼박스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제작 단계에 들어갔다. 캐스팅 과정에서 제작진이 가장 먼저 떠올린 배우는 엄흥도 역의 유해진이었다.
“감독님이 예능 촬영에서 유해진 선배님을 만났을 때 이 아이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해요. 그때 선배님이 ‘이거 너무 좋은데?’라고 반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드리게 됐고, 답을 주시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상하게 안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선배님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는 정말 금메달을 딴 기분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이 영화에 꼭 필요한 배우라고 생각했거든요.”
유해진이 영화의 중심축을 맡았다면,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은 작품의 또 다른 발견이었다. 이번 작품 이후 ‘박지훈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박지훈 캐스팅은 임은정 대표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사실 제가 CJ ENM에 있을 때 ‘프로듀스101’이 굉장히 화제였잖아요. 회사 안에서도 다들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박지훈 씨를 알게 됐습니다. 이후 드라마 ‘약한영웅’을 보며 배우로서 가능성을 봤죠. 그 작품을 보면서 ‘이 배우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연기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진지하더라고요. 감독님도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셨던 것 같습니다.”
임 대표는 특히 촬영 현장에서 보여준 박지훈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선배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현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먼저 다가가고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지훈아,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임 대표는 ‘왕과 사는 남자’가 예상보다 큰 관객 반응을 얻은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그는 특정 요소 하나의 힘이라기 보다 이야기와 배우, 그리고 시대적 정서가 맞물린 결과라고 봤다.
“사실 저희도 정확한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말씀해 주신 걸 들어보면 이야기의 정서가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거대한 역사 이야기라기 보다 한 인간의 선택과 마음을 따라가는 이야기라서 관객들이 더 감정적으로 따라와 주신 것 같습니다. 거기에 배우들의 힘이 더해지면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해 주신 것 같아요.”
영화의 성과와 별개로 일부 장면에 대한 아쉬움도 언급됐다. 관객들 사이에서 이야기된 호랑이 CG 장면에 대해 임 대표는 제작자로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호랑이 CG는 아쉬움이 있는 게 맞습니다. 감독님도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사실 저희도 아쉬움이 컸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지적을 해주셔서 오히려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수정 작업을 진행 중이고,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지는 논의하고 있습니다.”
임 대표는 이번 영화의 결실이 단순히 한 제작사의 성공 사례로 남기보다, 위축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이정표가 되길 바랐다. 그가 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격려와 개봉 후 이어지는 동료들의 응원은 제작자로서의 소명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가 하나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요즘 선배, 동료, 후배들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들리더라고요. 이 영화가 다음 세대 영화인들에게도 기회가 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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