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부터 보이스피싱까지…무대 위, 일상 밀착형 심리·스릴러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3.18 14:01  수정 2026.03.18 14:01

'빅 마더' '말벌' '벌쓰' 등 현대 사회 문제들 무대에

"묵직한 사회적 담론, 무대 넘어 일상으로 확장"

공연계에 현대 사회의 병폐를 심리 스릴러로 풀어낸 연극이 연이어 개막한다. 보이스피싱부터, AI 알고리즘을 다룬 연극, 트라우마와 공감의 부재, 확증편향을 꼬집은 작품 까지 모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 문제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 식이다.


연극 '말벌' ⓒ해븐프로덕션

이러한 흐름은 연극이 당대 대중이 겪는 실재하는 불안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먼 옛날의 비극이나 허구의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도화된 기술과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 개인이 직면하는 일상적 위협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연극 ‘벌쓰’(5월29일~6월27일, 대학로 나인진홀 1관)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심리극으로 재구성했다. 극은 보이스피싱 사기 조직에 모인 네 사람이 돈을 위해 범죄를 시작하지만, 그 범죄 속에서 서로의 과거와 감정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 극작가 시라이 케이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연극 ‘아무도 칼을 들지 않았다’(3월31일~4월12일, 대학로 더씨어터)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확증편향을 꼬집는다. 사형제 폐지 세미나에 모인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가상의 살인 사건을 두고 범인을 유추한다. 이들은 파편적인 단서를 입맛에 맞게 조합해 엉뚱한 인물을 범인으로 확신하며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하면서 인간의 합리성이 얼마나 쉽게 오류에 빠지는지, 그리고 그 확증편향이 어떻게 사회적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 지를 관객에게 질문한다.


정치와 미디어와 빅데이터가 결합해 정보와 여론을 조작하는 사회를 스릴러 형식으로 그린 무대도 있다. 연극 ‘빅 마더’(3월30일~4월25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의 성 추문 영상이 공개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조작된 정보와 영상이 퍼지며 혼란에 빠진 사회를 추적한다. 과거의 억압적 감시자인 ‘빅 브라더’ 대신, 사용자 맞춤형 알고리즘으로 대중의 생각을 포근하게 조종하는 ‘빅 마더’의 공포를 묘사한다.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의 극본이 원작으로, 프랑스에서 몰리에르상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사회의 단면은 연극 ‘말벌’(3월11일~4월26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을 통해 드러난다. 작품은 극작가 모건 로이드 말콤의 대표작으로, 20년 만에 재회한 고교 동창생 헤더와 카알라의 2인극이다. 과거의 폭력 트라우마를 안고 부유하게 사는 헤더가 빈곤하게 살아온 카알라에게 위험한 제안을 건네며 팽팽한 심리전을 벌인다. 숨겨진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사회적 계급 격차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파헤친 스릴러물이다.


창작자들이 이러한 일상적 소재를 심리극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내는 이유는 사기, 조작, 단절 등 현대인이 겪는 일상적 공포를 관객에게 가장 강렬하게 체감시키기 위해서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 극적 서스펜스를 즐기는 동시에, 자신 역시 언제든 범죄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기시감을 마주한다. 연극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묵직한 사회적 담론을 객석 너머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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