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플라자] BTS·케데헌 'K의 세계화'…K의 여전한 '4류 정치'로 괜찮은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26 07:30  수정 2026.03.26 07:30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기고

K콘텐츠 확산, 국력 커졌음 보여주지만

껍데기 안에 담아낼 시대정신은 미약

우리 정치권은 어떤 품격 보여주고 있나

'BTS(방탄소년단) 컴백 라이브: ARIRANG' 공연이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1일, 광화문광장은 온통 보랏빛이었다. BTS의 컴백 공연은 전 세계 190개국에 생중계됐다. 외형은 국가적 경사였다. 하지만 이 축제의 실질적 주인공은 글로벌 OTT 공룡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이번 중계권을 위해 수백억원대를 베팅했다 한다. 제작비를 지원하며 '무료 공연'의 명분을 샀다. 그 대가로 8500만명의 접속자를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막대한 수익과 데이터를 챙긴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우리 사회가 지불한 비용은 가혹했다. 공적 인력이 1만여 명 넘게 투입됐고 도심 동맥은 끊겼다. 900억원의 비즈니스 무대를 위해 국가 행정력이 '무상 서비스'를 자처했다. 민간 영리 활동에 공권력이 도구화된 셈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차지한 'K-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도 상징적이다. 총감독 매기 강(캐나다)을 비롯해 이재(미국) 등 주역 대다수가 북미 국적의 '한국계'다. 한국계를 곧 한국인이라 할 수 있나. 이들이 한국 정서를 풀어냈다고 해서 우리 문화의 우월이라 하는 건 한참 나간 것이다.


BTS의 일부 히트곡에서는 미국의 멜라니 폰타나와 독일의 린드그렌이 빚은 팝의 문법을 발견할 수 있다. 군무 뒤에는 할리우드 안무가 시에나 라라우의 설계가 있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수조원을 버는 동안 우리는 소재 저수지로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K-콘텐츠의 확산은 우리 국력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계인이 보여준 '수용성'과 '다양성'의 확대가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세계가 열려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문화 산업의 저수지'에 머무는 이유는 분명하다. 화려한 껍데기 안에 담아낼 고유한 철학과 시대정신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화 강국은 상품이 아니라 '가치'를 제안한다.


문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프랑스는 예술을 경제 논리로만 보지 않는다. "문화는 인간의 존엄을 다루는 영역"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확고하다. 대입 시험에서 철학을 논하는 '사유의 힘'은 국가의 품격이 된다. 나와 다른 생각도 존중하는 '관용(Tolérance)'의 정신은 권력을 비판하고 파격을 수용하는 토양이 된다.


북유럽은 또 어떤가. 덴마크와 스웨덴의 디자인이 세계를 매료시킨 이유는 화려함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평등'과 '공동체적 신뢰' 때문이다. 남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정서는 실용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낳았다. 자전거로 출근하는 지도자와 투명한 정치는 국민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곧 그들의 문화적 경쟁력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적 토대는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것이 최고"라고 외칠 뿐, "인간이 어떻게 존엄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 상품 수출은 늘었으나 그 속의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의 종속보다 무서운 건 '가치의 부재'다. 사회 운영 원리가 저열하다면 결코 존경받는 주인이 될 수 없다.


다시 김구 선생의 '소원'을 떠올려 본다. 선생이 갈망했던 '높은 문화의 힘'은 문화상품의 수출량이 아니었다. 인의(仁義)와 자비, 도덕적 권위가 살아있는 사회였다.


문화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다. 그 가치의 방향을 잡고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정치다. 그래서 정치문화는 한 나라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세계가 K-콘텐츠에 환호할 때 우리 정치권은 어떤 품격을 보여주는가. 정치 지도자가 차마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는다. 법적 책임을 무마하려 국가 시스템을 도구화한다. 절제와 타협은 없다. 숫적 우세를 앞세워 입법을 독주한다. 이러한 정치문화는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 인간존중, 평화, 정의와 공정을 비웃는 자가당착이다.


세계인은 바보가 아니다. 지도층의 저열한 언사와 도덕적 파산을 목격하면 고개를 돌린다. 포장지는 화려한데 내용물은 불량품인 격이다. 이런 정치가 계속되는 한 문화 강국은 '허울 좋은 구호'일 뿐이다.


진정한 문화 강국은 '정치적 세련미'에서 완성된다. 지도층의 정직성, 법치 존중, 타자를 배려하는 품격 있는 언어가 사회 전반에 흐를 때 비로소 존경받는다.


프랑스의 비판 정신과 북유럽의 신뢰는 정치가 인간에 대한 예우와 합의를 최우선으로 할 때 싹튼 결실이다. 대한민국은 콘텐츠 산업을 넘어 진정한 문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보편적 인류애와 엄격한 도덕성, 그리고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선제돼야 한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광화문에서 우리가 되새길 것은 퍼포먼스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운영 원리와 지도층의 품격이 세계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한 자성이다. 정치문화의 성숙 없는 문화 강국은 결코 오지 않는다.


김구 선생이 오늘 우리를 본다면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제는 상업적 환호에서 깨어나 '품격 있는 국가'를 고민할 때다.


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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