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홍콩침례대학-홍콩대학
계유정난 등 격변기와 평시 비교
조선 관료제 작동 메커니즘 밝혀
조선왕조실록의 계유정난 시기 기사원본(왼쪽)과 온라인 한국어 번역본.ⓒKAIST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큰 인기를 끌며 비극적인 역사 계유정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원(KAIST)·국제 연구진이 조선왕조실록과 과거 급제자 기록을 분석해 조선 관료제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는 디지털 인문학·복합계 문화물리학의 결합으로, 한국사의 국제적 연구 가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KAIST는 문화기술대학원 박주용 교수 연구팀이 홍콩침례대학 최동혁 박사와 홍콩대학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과 문과방목(과거 급제자 명단)을 디지털 인문학과 복합계 과학 방법론으로 분석, 조선 관료 1만4600여명의 경력 패턴을 밝혀냈다고 1일 밝혔다.
연구팀은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이 유지될 때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작동했지만 특정 집단에 권력이 집중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국가 전체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즉, 조선의 멸망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의 붕괴의 결과였다는 점을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6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국가 운영 기록을 담은 세계적 유산으로, 당시 정치·사회 구조를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다.
연구진은 먼저 조선 초기 권력 구조 극적 변동 사태인 1453년 계유정난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실록 기록을 바탕으로 단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과 교류한 관료들의 관계망을 구축한 결과 세조와 가까웠던 인물들은 공신으로 부상하고 안평대군 측 인물들은 숙청되는 등 권력 변화가 관료 사회에 끼친 영향이 데이터로 명확히 드러났다.
다만 이러한 무력 정변은 조선 역사상 극히 소수의 사례였기 때문에 연구진은 관료제의 일반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장기적인 분석을 수행했다.
연구팀은 관료가 맡았던 관직의 높이와 재직 기간을 종합해 총성공지표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각 관료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서 얼마나 오래 활동했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분석 결과,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 동안 출신 가문이나 지역과 개인의 성공지표 사이에는 일정 수준의 상관관계는 있었지만 그 수준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정상적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일정 수준의 공정성과 사회적 이동성이 유지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러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특정 가문이 경쟁이 아닌 권세를 통해서 과거 급제자와 고위 관직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관료 사회의 불평등이 급격히 심화됐다.
연구팀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특정 가문이 관료의 성공 지표를 집중적으로 차지하는 현상을 확인했으며 이는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실력 본위의 등용 시스템이 무너진 구조적 변동를 해결하지 못한 조선 사회는 곧 쇠퇴와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주용 교수는 “연구는 단기간의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한계를 넘어 한 국가 전체 구조의 역사적 변동을 관찰한 사례”라며 “국가의 흥망성쇠에 개인과 집단의 행위가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의 공정성과 인재 등용 문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화된 역사 자료와 과학적 데이터 분석의 결합은 과거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미래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향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조선사 데이터베이스를 확장, 해외의 관료제와 비교하고 전세계와의 교류 기록도 분석하여 조선의 국제사적 의의를 거시적으로 규명할 계획이다.
연구 결과는 통계물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Physica A: Statistical Mechanics and Its Applications’ 4월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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