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오너 4인방.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유로존 위기 장기화, 미국 실업률 상승, 중국 성장률 둔화….'
유럽발 재정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다른 축인 미국과 중국에서도 위험 신호가 감지되자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등 재계는 상황별 비상경영에 돌입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재계 거물들이 직접 유럽 현장을 시찰하고, 글로벌 사업조직을 점검하는 등 주요 그룹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경제 위기에 사전 대응하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유럽 출장 직후 쇄신 주문, 수뇌부 인사
삼성그룹 서초사옥
삼성그룹을 이끄는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경기불황 상황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지난달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기간이 무려 3주에 달하는, 대기업 오너로서는 흔치 않은 장기 일정이다.
이 회장이 유럽 출장을 통해 얻어온 것은 '위기의식'이었다. 이는 삼성그룹 전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변화와 쇄신 주문으로 이어졌다.
유럽 출장 직후 가장 먼저 그룹 수뇌부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장에 김순택 부회장 대신 최지성 부회장을 앉히고 삼성전자를 권오현 부회장 원톱체제로 전환시켰다.
삼성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지난달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주문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경영감각과 빠른 판단력,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갖춘 최지성 부회장이 기용됐다"고 밝혔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25일부터 권오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침체를 극복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먼저 이날 경기 용인시 기흥사업장에서 부품(DS) 부문의 핵심 경영진과 해외 법인장이 참석한 가운데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이어 26~27일엔 수원 사업장에서 완제품(DMC) 부문의 글로벌 전략회의를 시작했다.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열리는 글로벌전략회의는 실적을 점검하고 향후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자리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불황 속에서 연초 세운 사업부별 매출 및 이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해외 법인장 긴급 소집…정의선 부회장 유럽 급파
현대·기아차 양재사옥
현대차그룹은 유럽시장 자체의 위기보다 그 파장이 다른 글로벌 시장으로 전이(轉移)되는 것을 사전 차단하는 데 역점을 두는 모습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5일 해외 법인장들을 긴급 소집해 하반기 글로벌 생산 판매 전략을 집중 점검했다. 원래 7월 중으로 예정된 회의를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한 달 앞당겨 실시한 것.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유럽 재정위기가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판매둔화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유럽재정위기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전에 위기 대응을 철저히 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때 어슈어런스 등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 유럽위기도 선제적 대응을 통해 현대·기아차가 한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또 "유럽 재정위기가 타 지역으로 전이될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해외 시장별 상황변화를 감안한 차별화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독려했다.
앞서 이달 초 정 회장은 유럽 시장 대응책 모색을 위해 현지에 현대·기아차 경영진을 급파했다. "유럽 위기는 유럽에서 차단하라. 직접 유럽 현장을 방문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라"는 게 정 회장의 특명이었다.
이에 따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이 각각 각사 판매 및 생산법인을 방문해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등 유럽위기 진화에 나섰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 유럽 판매법인에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각국 판매법인장들과 함께 유럽 상황을 숙의하고 향후 대책을 집중 논의하는 한편, 유럽 생산거점인 현대차 체코공장을 찾아 신형 i30의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생산품질을 집중 점검했다.
이 부회장도 유럽 판매법인을 방문, 현지 법인장들과 함께 판매 확대 및 위기 돌파 방안을 논의한 후 슬로바키아공장을 찾아 올 3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유럽 전략차종 씨드의 생산라인을 직접 살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을 연이어 방문해 유럽 생산, 판매, 마케팅 전략을 집중점검하고 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LG그룹, 한 달간 계열사별 릴레이 전략보고
여의도 LG트윈타워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직접 계열사별 중장기 전략을 챙기며 하반기 경영전략 및 글로벌 경제위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5일부터 한달 동안 계열사별 '중장기 전략보고회'를 릴레이로 진행 중이다.
이 보고회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주요 계열사 별로 CEO 및 사업본부장들의 하반기 사업보고를 받고 사업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글로벌 불황 속 체질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25~26일 경기 평택사업장과 서울 LG가산디지털센터를 각각 방문해 TV와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임원들과 전략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구 부회장은 앞서 지난 19~20일 열린 'LG 중장기전략보고회'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22일에는 백색가전 공장이 있는 경북 구미와 경남 창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유럽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구 부회장이 생산 현장을 방문해 하반기 경영 목표 달성이 가능한지 등을 점검하는 차원에서의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생산현장을 방문해 '매출 위주인 볼륨 경쟁보다 수익성 중심의 밸류 경쟁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유럽 재정위기 여파 속에서도 하반기 경영 목표를 달성하자"고 독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GS그룹, 조직 슬림화로 현금 확보
강남 GS타워
GS그룹은 위기를 버틸 수 있는 '총알'을 확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최근 핵심계열사인 GS칼텍스를 중심으로 조직슬림화에 나서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수출비중이 큰 정유사이기 때문에 미국 수요가 감소한 데다 중국수요 감소, 유럽발 재정위기까지 겹쳐 장밋빛 전망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력 사업인 정유와 화학분야를 남기고 자원개발 등의 사업을 지주회사인 GS에너지에 넘기면서 GS칼텍스가 확보한 현금은 무려 1조5000억원에 달한다.
또, 일부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것도 조직 슬림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SK그룹, 리스크 크지 않지만 '예의주시'
SK 서린빌딩
SK그룹은 아직 비상경영체제 전환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지는 않다.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은 물론, 정유·에너지 부문의 SK이노베이션도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정유·에너지 사업의 경우 유럽과 직접적인 거래 규모가 크지 않고, 결재 통화 비중이 유로화보다는 달러화가 높기 때문에 환율 측면의 리스크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유럽 경제위기가 2008년처럼 확산돼 환율, 유가 등이 요동칠 경우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유로존 상황이 어느 선으로 진행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외부 전투도 힘든데…내부에서 발목잡나
한편, 재계는 이처럼 외부적 위기요인이 심각한 가운데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강화 움직임으로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지원은 못해줄망정 '내부의 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재계 관계자는 "이미 대내외 악재를 만난 우리 경제에 노동계의 무리한 요구들이 정치적으로 반영된다면 개별기업에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노사갈등이 빈번해지고, 일자리창출 여력도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반기업 정서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기업인들의 고충을 전하고,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로 인한 복지공약 남발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을 분석해 발표하는 식의 모니터링을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전경련의 대응책도 점차 적극화될 전망이다.
전경련은 또, 글로벌 경제 불황이 계속되는 만큼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세제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전경련은 올해 종료되는 각종 기업 투자관련 공제와 감면 제도를 연장하고, 적용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2012 세제개편 종합건의서'를 지난 17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또 올해부터 시행될 고용 창출 투자 세액공제와 관련해 공제율이 낮고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실제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며, 현실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입장 등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데일리안 = 박영국/이광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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