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챙긴 미국, 우리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

이광표 기자 (pyo@ebn.co.kr)

입력 2012.08.27 14:20  수정

애플 압승 사례로 본 '보호무역주의'..."다른 기업 불똥 우려" 정부차원 대응 요구


미국에서 벌어진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이 애플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가운데 일각에서 국수주의에 기반한 보호무역주의 논란이 일고 있다. 반면 기업들의 특허피해를 나몰라라 한 채 뒷짐만 지고 있는 우리정부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25일 오전(이하 한국시각) 새너제이에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에서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미국 소송 배심원단이 애플의 '완승'이라고 할 만한 평결을 내렸다.

배심원들은 삼성이 주장한 특허에 대해 애플이 아무 것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반면 애플이 제기한 사용자인터페이스(UI) 기술 모두와 디자인 특허 대부분을 삼성이 침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삼성전자는 미 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애플의 승리'가 아니라 '소비자의 손실'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번 평결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줄이고 혁신을 제한할 것이며 잠재적으로 제품 가격을 더 높이게 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국기업 '애플'부터 챙긴 미 법원의 '국수주의'

특히 애플의 디자인 특허는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이며 두께가 얇고 앞면이 평평하다' 정도의 모호한 개념만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특허가 그대로 인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삼성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 사이에서도 "이런 논리라면 모두가 특허침해이 기업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미 법원의 평결은 최근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한국의 판결 결과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배심원들이 자국 기업에게 유리한 관점에서 평결을 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재판 진행 과정에서도 삼성이 신청한 증거나 증언을 재판부가 잇따라 기각하면서 편파논란은 예고됐었다.

이보다 약 20시간 앞선 지난 24일 한국의 서울중앙지법은 삼성전자가 애플이 주장한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놓는 등 삼성전자에 '판정승'을 안겼다. 이를 두고 해외에서는 한국 법원이 자국 기업인 삼성 챙기기에 나섰다며 국수주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애플의 완승을 선언한 미 법원의 판결이야말로 더욱 노골적인 국수주의적 처사라는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월풀의 주장을 받아들여 삼성, LG 등 한국산 세탁기에 최고 82%의 관세를 부과하는 반덤핑 예비 판정을 내린 것도 보호무역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유럽연합(EU)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 규제를 요청한 것 역시 한국 기업을 견제하려는 보호무역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른 기업도 무차별 공세 시달려...우리정부는 뒷짐만?

한쪽 손을 들어주기 힘들 것이란 예상을 깨고 애플이 안방에서 압승을 거두자, 세계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국 기업 보호주의’ 성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미 법원이 결론 내린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을 비춰볼 때 각국에서 유사 소송이 진행 중인 국내 다른 기업들도 또 다른 ‘충격적 패배’를 맛보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관계자가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왼쪽)과 포스코 전기강판 모습. 두 회사는 각각 듀폰사와 신일본제철로부터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

실제 삼성 외에도 현대차는 “연비를 속였다”는 이유로 미국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위치독’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으며, 포스코는 지난 6월 신일본제철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했다. 코오롱도 미국 듀폰사와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벌이고 있다.

당장 외국기업이 요구하는 배상금만 따져봐도 삼성 3조원, 포스코 1조 4000억원, 코오롱 1조원 등 막대한 금액이다.

이처럼 국내 대표 기업들은 최근 들어 외국기업들의 특허 제소 등 기타소송에 부쩍 시달리고 있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와 특허청 등에 따르면 한국 기업과 다국적 기업 사이에 벌어진 국제 특허소송 건수는 2009년 154건에서 지난해 278건으로 늘어 2년 새 80%나 증가했다.

우리 기업의 피소 건수는 최근 5년간 총 분쟁 1070건 가운데 821건(78%)에 이를 만큼 압도적이며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 중 일부는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는 등 견제방식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더욱 심각한 점은 정보기술(IT)·자동차·철강·조선·섬유산업 등 우리 기업이 최고반열에 올라 있는 업종에서 소송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 상무부로부터 삼성, LG의 세탁기가 미국에서 반덤핑 예비판정을 받아 터무니없이 높은 덤핑 마진율 부과받은 사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허분쟁에 휘말린 기업의 한 관계자는 "경기침체에 가뜩이나 어려운데 엄청난 재판비용을 쓰고 이미지에 타격까지 받게 될까 걱정된다"면서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힘을 써도 모자랄 판에 해외 경쟁사의 무차별 소송 공세에 휘말려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 그로 인한 타격은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뒷짐만 지고 있는 우리정부에 대한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는 가운데 분쟁에 휘말릴 경우 정부가 일정부분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상헌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부회장은 "미국 정부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이 애플 쪽으로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열심히 뛰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업계에만 맡겨놓은 것 같다"며 "정부도 현지공관과 모니터링 등을 통해 성명 발표라든지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 수출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허분쟁이 삼성-애플 대형기업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며 "특히 중소기업은 특허에 취약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우리는 효자산업을 어떻게든 보호해야 하는게 정부 역할인데 관망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분쟁에 휘말린 개별 기업만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도 "기업의 자구책도 필요하겠지만 국가차원의 방책 마련이 시급하고 국제소송에 무방비로 노출된 기업들의 특허 보호망부터 튼실하게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데일리안=이광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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