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2011시즌 개막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삼성을 4강 후보에서 배제했다.
2010시즌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자 2위팀을 4강 후보로 선뜻 꼽지 못한 이유는 사령탑의 급격한 교체 때문이었다.
삼성은 12월 말 선동열 감독(현 KIA)을 전격 경질하고 류중일 감독을 새로 임명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파격 발탁이었다. 그만큼 류 감독은 준비되지 않은 감독 그 자체였다. 전문가들은 사령탑의 교체가 삼성의 2011시즌을 암울케 할 것이란 조심스런 예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류 감독은 신임 감독임에도 ‘트레블’을 달성했다. 정규 페넌트 레이스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 그리고 아시아 시리즈 우승 3가지다. 이는 '야신' 김성근 감독도 실패했던 위업이다.
감독 초년병으로 모든 걸 달성했지만 류 감독에겐 명예스럽지 못한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바로 선 감독의 유산으로 일궈낸 성적이라는 야구계 일각의 평가 절하가 바로 그것. 그래서 2012시즌이 류 감독 입장에선 중요했다.
류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1일 잠실구장서 열린 LG전에서 장단 17안타를 터뜨리며 LG를 9-3으로 제압, 매직 넘버를 0으로 수렴시켰다. 2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이다. 이제는 선 감독의 유산으로 얻은 어부지리 우승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다. 그 근거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선발 야구' 무게 중심 이동
선 감독의 야구는 불펜에 방점을 둔 '지키는 야구'였다. 특급 마무리 오승환을 필두로 권오준, 권혁, 안지만, 정현욱으로 구성된 최강 불펜진을 가동하는 야구다. 선발 투수는 5회까지 던지고 6회 부터는 불펜진이 총출동하는 시스템 야구다. 선 감독의 지키는 야구는 2005시즌 이후 5년 동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선 감독 야구에서 선발 투수는 '먼저 던지는' 투수에 불과했다. 완봉과 완투, 이닝 이팅보다는 퀄리티 스타트가 더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불펜진의 과부하다.
선발 투수의 소화 이닝은 극소화되고 불펜의 투입 이닝이 극대화되면서 불펜 필승조가 부상 도미노에 빠졌다. 권오준, 권혁 등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아야 했고, 정현욱은 잦은 등판으로 ‘국민 노예’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오승환은 2010시즌 도중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로 수술대에 올랐다.
오승환의 수술로 인해 삼성 불펜진의 과부하는 2010시즌 절정에 달했다. SK와의 한국시리즈 스윕패라는 초유의 불명예도 결국은 불펜 과부하에서 비롯된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류 감독은 달랐다. 2011시즌에 돌입하자 선발 투수의 이닝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갔다. 그 결과 2009시즌 36승에 불과했던 팀 선발승이 56승으로 20승이나 대폭 증가했다. 덕분에 고질적인 문제였던 불펜의 과부하가 해소됐다. 올 시즌 76승 중 62승이 선발승이다. 작년보다 이미 6승이 늘어났다.
선 감독의 불펜 야구가 류 감독의 선발 야구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는 방증이다. 선 감독의 야구 구동 방식이 후륜 구동이었다면 류 감독의 야구는 '전륜 구동'이다. 사령탑 교체 이후 드러난 가장 극명한 차이다. 최근엔 선 감독조차도 특유의 불펜야구를 포기, 선발야구로 선회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최근 연속 완투승이 그 단적인 근거다.
지키는 야구 선회 '공격 야구 강화'
지키는 야구라는 것은 최소 득점을 최소 실점으로 지켜내는 야구다. 선 감독의 지키는 야구는 일련의 방정식이 존재했다. 선발 투수의 5이닝 이상 투구, 불펜의 조기 가동, 그리고 막판 박빙 접전 시 발 빠른 대주자 강명구의 활용을 통한 결승점 짜내기 등등이 그것이다.
지키는 야구의 대전제는 빈약한 득점력이다. 강한 타선이 있다면 최소 득점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 선 감독 시절엔 그래야만 했다. 팀 타율이 2007년엔 최하위(0.254)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도 5위와 6위권에 머물렀다.
올 시즌 삼성은 공격의 팀으로 급변했다. 2일 현재, 팀타율 1위(0.273) 팀 장타율 1위(0.391) 팀 출루율 1위(0.355) 공격 3개 주요 지표에서 모조리 1위에 올랐다. '타자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던 선 감독 시절과는 타자들의 위상 자체가 달라졌다. 화끈한 타력 덕분에 접전 시 대주자 강명구의 활용 빈도가 급감한 점도 선 감독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작년 팀타율 (0.263)보다 1푼 이상 타율이 상승했다. 2002시즌에 팀 타율 1위(0.284)를 차지한 이후 10년 만에 1위를 노리고 있다. 공격력이 강화됐다고 마운드가 약화된 건 아니다. 마운드 역시 리그 팀 평균자책점 1위(3.44)다.
선 감독의 야구 구동 방식이 후륜 구동이었다면 류 감독의 야구는 '전륜 구동'이다.
믿음의 '덧셈 야구'
선 감독의 야구는 베테랑을 가급적 빨리 은퇴시키고 젊고 유능한 신진급 선수들을 키워내면서 시즌 도중 리빌딩을 접목하는 방식의 야구였다. 그 대표적인 은퇴 선수들이 '양신' 양준혁과 김한수 코치다. 게다가 이승엽의 복귀도 원치 않는다는 뉘앙스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즉, 자신이 스스로 키운 선수들로 자기 색깔의 야구를 구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류 감독의 야구는 정반대다. 오히려 신인의 과감한 실험보다는 베테랑과 주축 타자들을 중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올 시즌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도 믿음을 잃지 않은 최형우와 배영섭이 그 증거다. 그렇게 부진했던 채태인을 어쨌든 살려보려고 지속적으로 기회를 제공했던 그다. 선 감독의 선수 기용방식과는 대립각에 서 있다.
더욱이 이승엽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영입, 올 시즌 우승 가도에 힘을 보탰다. 이승엽의 경험과 노하우가 시즌 도중 후배들에게 전해졌고 그게 팀 경쟁력으로 승화됐다. 팀 선수들의 능력을 믿고 빼기 보단 덧셈 야구를 실천한 결과다. 베테랑을 중용한다고 신인발굴에 게을리 한 것도 아니다. 정형식과 심창민은 올 시즌 삼성이 건져낸 미래다.
선 감독의 야구는 '뺄셈 야구'다. 베테랑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할 기회를 주기 보단 자신의 컬러에 맞는 야구를 구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준혁과 이종범이라는 레전드의 조기 은퇴다. FA 영입에 인색했던 선 감독이 최근 들어 FA 영입으로 선회했다. 포지션의 중대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선 감독 시절 삼성은 투타의 불균형, 즉 투수 그 중에서도 불펜, 그리고 베테랑은 배제되는 '불균형 야구'였다면 류 감독의 삼성은 선수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두고 투타와 신구 세대가 조화를 이룬 '균형 야구'라고 볼 수 있다.
류 감독은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으로 'Sun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낫다고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이르다. 최종 진위 여부는 한국시리즈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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